Ellyjane 2024. 8. 22. 23:39











타라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머리를 굴렸다. 잠이 깨지 않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코이노의 말대로 오늘 밤 살인이 난다면, 입학식을 한 날 포함 3일째에 살인이 나는 것인데, 다른 살인도 3일 간격을 두고 벌어진다고 치고.. 피해자와 검정 2명씩 죽는다고 치면.

3명 남으면 끝난다고 했지? 그러면 13명이 죽어야 되니까... 가만 보자.  3일. 3일. 3일. 3일. 3일. 3일. 나머지 한 명은 길 가다가 자빠져 죽었다 치고. 최소 18일은 이 거지 같은 곳에 있어야 하는군.

타라는 절대로 친구들이 죽게 두지 않겠다는 결심 따위 하지 않았다. 만난 지 3일 채 안 된 사람들한테 뭘 바라는가? 타라는 하루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는 게 목표였기에, 친구들의 죽음을 거리낌 없이 전제로 두었다. 하지만 절대 죽으면 안 되는 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타라가 이런 생각을 할 때 빼놓은 전제였다.

타라 이루카나 : 센이시 히치카와...

뒤늦게 타라는 그 이름을 떠올렸다.

타라 이루카나 : 센이시 기억 찾아주기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 것을 축하해.

코이노 미노리 : 잠깐, 누구 마음대로?

타라 이루카나 : 내 마음이야.

타라는 코이노를 설득(..?)해서 자신의 계획에 동참시켰다. 코이노의 논리대로라면 센이시가 기억을 잃은 것은 흑막이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센이시의 기억에 중요한 정보가 있는 거고, 그걸 찾으면 흑막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 타라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기억을 타인이 찾아줄 수 있겠는가? 창고라도 뒤져서 기억이 나온다면 하루종일 창고에 있어줄 수 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었다.

타라 이루카나 : 일단 센이시한테 알려줘야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타라는 약간은 성급하게 행동을 결정하고는 개인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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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는 센이시의 개인실 문 앞에 섰다. 센이시 본인이 이 프로젝트의 진행 사실을 알아야 기억을 찾던지 뭔갈 할 수 있기에, 타라는 주저 없이 문을 두드렸다.

타라 이루카나 : 센이시! 나 타라인데 할 말이 있어.

센이시 히치카와 : ...

타라 이루카나 : 센이시! 센이시..? 없나..

타라는 고개를 돌리고는, 패드를 들었다. 타라는 채팅 앱으로 센이시에게 문자를 보냈다.


타라 이루카나 / 할 말 있으니까 보면 답장 주셈. 개인실로 갈게


그렇게 보내고 난 참이었다.

하나리 에린 : 이루카나~! 뭐 해?

타라 이루카나 : 뭘 하는 건 아니고.. 센이시한테 할 얘기가 있는데 답을 안 해서. 자는 걸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얘기하려고. 그보다.. 하나리 너는 뭐 하는데?

하나리 에린 : 내가 여기 1층의 지도를 그렸었잖아? 그러니까 개인실 지도도 그리려고! 거의 완성됐어!

타라 이루카나 : 오- 좀 봐도 돼?

하나리 에린 : 얼마든지.

하나리는 타라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하나리는 제법 뿌듯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 요인에는 타라의 표정도 한몫을 했다.

타라 이루카나 : 너 개인실 전체 지도 있지?

하나리 에린 : 엉, 이거 말이지?

하나리는 주머니에서 두 번 접힌 종이 두 개를 꺼냈다. 하나리는 한 장은 도로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한 장은 정성스레 펼쳐서 타라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타라 이루카나 : 응, 이 빗금 친 부분을 자세히 그린게 이 그림인 거지?

하나리 에린 : 저엉다압! 빠밤빰 빠밤 빠밤빰 빠밤--

타라는 옆에서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하나리를 보며 살짝의 회의감을 느꼈지만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때 방문 하나가 열렸다.

센이시 히치카와 : 흐아암.. 앗, 타라!

타라 이루카나 : 아, 잘 잤어?

하나리 에린 : 뭐야, 이루카나 쨩 히치카와한테 스윗한 눈빛 보내기는!

센이시는 방금 깼는지 비몽사몽한 목소리였다.

센이시 히치카와 : 하하, 아마 아닐 거야. 오, 이거 하나리가 그린 거야?

하나리 에린 : 당근이지! 아마 꽤 도움이 되겠지? 학급재판... 에서... 도...?

잠시 세 사람 사이에 정적과 함께 싸한 공기가 돌았다.

타라 이루카나 :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학급재판이 일어날 일은 없을 거야. 뭐.. 너무 안일한 생각이라면 그렇겠지만...

하나리 에린 : 미안... 나 때문에 분위기가 축 쳐져버렸네...

센이시 히치카와 : 타라 말대로야. 그럴 일은 아마 없을 거야.

타라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결심하고는 말했다.

타라 이루카나 : 하나리, 나 센이시랑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할 거 마저 해줄래?

하나리 에린 : 예압!!! 알겠어! 잘 썸.. 아 아니 대화해!

센이시 히치카와 : 뭐, 뭐- 하나리!! 뭐라고 했냐?!

타라 이루카나 : 하하.. 난 모르겠네? 가자!

타라는 센이시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


내 개인실. 언젠가 타라가 내 개인실에 와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는 타라가 내 모노패드를 훔쳐 방문을 열었었지... 그때도 타라는 볼 게 없다고 불평했지만 역시 내가 봐도 볼 게 없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타라 이루카나 : 센이시! 듣고 있지?

센이시 히치카와 : 으... 으응. 계속해.

타라 이루카나 : 그렇지... 단도직입적으로, 우리는 네 기억을 찾아야만 해.

내 눈의 크기가 살짝 커졌다. 기억은 언젠가 찾기는 해야 했으니 새롭고 신박한 내용은 아니지만, 굳이 의무의 의미를 붙여 말할 필요가 있나? 물론 기억을 언제까지고 잃은 채 살 수 없으니 의무도 맞다. 근데 타라는 굳이 이 사실을 개인실까지 불러서 단 둘이 있는 상태에서 말했어야 했나?

센이시 히치카와 : 음... 그게... 왜?

이 말을 뱉고 나서 타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난 타라가 당연히 몰라서 묻냐고 따지고 들 줄 알았지만 타라의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타라 이루카나 : 말하기 귀찮은데, 직접 읽어.

뭐지, 이 거만한 말투는. 이라는 생각도 잠시, 난 타라가 내민 모노패드 속 내용을 보고는 입을 작게 열 수밖에 없었다.


타라 이루카나 /

코이노 미노리 /


... 코이노? 타라가 그 코이노와 이런 분위기로 대화를 해? 내가 본 바에 따르면 좀 더 심각한 분위기여야 되는 것이 아니었나.

타라 이루카나 : 왜? 놀랐어? 마저 읽어봐. 그게 끝이 아니니까.


타라 이루카나 / 나 센이시한테 설명하러 가야되는디

타라 이루카나 / 그 대화 요약 좀

코이노 미노리 / 님이 설명

타라 이루카나 / 귀찮음

코이노 미노리 /


센이시 히치카와 : 이거... 중요한 얘기는 맞는 거지?

타라 이루카나 : 질문은 끝까지 읽고!


코이노 미노리 / 요약해주면 뭐해줄거임

타라 이루카나몰라

코이노 미노리 /

 
타라 이루카나 / 아니 님아 님도 증거 남겨놔야 안심될 거 아님??

코이노 미노리 /
뭐라는거노;

코이노 미노리 / 증거 이러네

타라 이루카나 / 그럼 님 비밀 밝혀도 괜찮은 거??

코이노 미노리 / 씨발 안돼


비밀이라... 코이노의 반응을 봐선 딱히 중대한 건 아닌 것 같지만.

타라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져서 재빨리 손가락으로 화면을 밑으로 내려 다른 대화들을 보았다.


코이노 미노리 / 센이시의 기억은 흑막이 이용 중. 중요한 기억이 있으니 일부러 지운 것으로 추측. 따라서 기억을 찾으면 그 '중요한 사실'을 이용해 흑막에게 대미지 입힘. 잘 되면 탈출.

타라 이루카나 / ㄱㅅㄱㅅ

코이노 미노리 / 한 번만 더 이런 짓 시켜봐라

코이노 미노리 / 그땐 내가 검정임 님 피해자

타라 이루카나 /


그렇게 대화는 끝났다. 나는 코이노가 요약해 준 내용을 반복해 읽으며 내용을 곱씹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다시 읽으려다가 타라가 모노패드를 뺏어가는 바람에 읽지 못했다.

타라 이루카나 : 이게 다야. 별 거 없지?

센이시 히치카와 : (그럼 네가 설명했어도 되잖아...) 아, 아무튼 다 읽었으니 질문해도 될까?

타라 이루카나 : 마음대로.

센이시 히치카와 : 코이노의 비밀이란 건 뭐야?

타라는 화면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천천히 대화를 읽으며 화면을 위로 올리다가, 내 질문에 피식 웃었다.

타라 이루카나 : 흐흐흐... 비밀은 보통 말할 수 없는 걸 뜻해요. 이 사람아.

나는 타라가 웃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타라가 웃는 걸 보니 중요한 게 아닌 건 맞았나 보다.

타라 이루카나 : 그러니까... 이 얘기는 끝났어.

센이시 히치카와 : 그럼 좀 가줄래? 아직도 조금 졸려서... 잘 가.

타라 이루카나 : 야, 기다려!

타라는 그녀가 떠나기도 전에 손을 흔들고 있는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내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타라가 자신이 앉은 옆 자리를 두 번 툭툭 치는 것을 보고 나도 침대에 앉았다.

센이시 히치카와 : 타라, 왜 이러는 거야..?

타라 이루카나 : 음... 그게 말이야.

타라는 한숨을 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타라 이루카나 : 그냥 마음이 복잡하달까..? 코이노 말대로 오늘 밤 살인이 난다면... 내일 학급재판을 하겠지. 그게 이 평온한 삶의 끝일지도 모르잖아?

센이시 히치카와 : 왜 그런 소리를 해, 타라. 학급재판 따위 할 리가... 아무튼 우린 다 같이 살아서 나갈 거잖아.

타라 이루카나 : 음... 미안! 조금 딱딱한 이야기였어?

센이시 히치카와 : 으, 응. 조금.

타라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궁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타라는 내 방을 둘러보다 책상 위에서 편히 누워있는 네잎클로버 파우치를 발견했다. 타라는 그 파우치를 가져와 내 눈앞에 내밀었다.

타라 이루카나 : 난 이게 널 닮았다고 생각해. 마치 널 대하듯 대하게 된다니까.

센이시 히치카와 : 하하...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고문만은 안 했으면 좋겠네.

타라 이루카나 : 하하하, 실컷 괴롭혀줄 테니까 기대하라구.

타라는 미소를 지으며 파우치에 주먹을 대고 때리는 시늉을 했다.

타라 이루카나 : 그러니까, 이거 그냥 책상 위에 대충 올려두지 말고 소중히 대하라고. 내가 선물한 거잖아. 그리고... 이게 너이기도 하고!

센이시 히치카와 : 그래. 소중히 대할 테니 너도 소중히 대해줘.

타라 이루카나 : 응, 알았어. 내일 봐! 불침번 서려면 체력을 아껴놔야 하니까, 난 한숨 자야겠어.

센이시 히치카와 : 응.. 그래. 내일 보자.

타라는 일어나며 크게 하품을 했다. 그리고 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쪽-

센이시 히치카와 : 에..?

타라 이루카나 : ♪~

타라는 내 파우치에 짧게 입맞춤을 하고는 파우치를 그대로 책상에 올려두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건지 물어볼 새도 없이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재빨리 개인실을 빠져나갔다.

센이시 히치카와 : 대체 무슨...

타라 이루카나 : 난 이게 널 닮았다고 생각해. 마치 널 대하듯 대하게 된다니까.

타라 이루카나 : 그리고... 이게 너이기도 하고!

설마... 타라는 파우치를 나라고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입을 맞춘 것은...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는 바람에 침대에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 곧장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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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

역시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 뒤척이며 1분 후엔 잘 수 있기를, 하고 빌었던 것만 30번이 넘는 것 같다... 30번? 그러면 최소 30분이 지났다는 거잖아. 하고 시계를 보니 정답이었다. 벌써 7시야?

밤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3시간을 그냥 보낼 순 없으니 식당이라도 가보기로 했다. 할 게 없으면 다들 거기 모이니까. 저녁 시간이기도 하고.

나는 개인실 문을 열고 식당을 향해 걸었다. 딱히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할 게 없어도 너무 없었다. 식당 문고리를 잡고 내 쪽으로 당기자, 이미 몇 사람이 밥을 먹고 있었다.

니에류우 텐 : 오, 센이시! 안녕.

센이시 히치카와 : 안녕.

하타미츠 코지 : 좋은 저녁입니다, 센이시 씨.

인원을 한 번 쓱 둘러보고, 나도 밥을 먹기 위해서 주방으로 향했다.

나미유 카츠키 : 오늘 저녁은 인도식 카레와 난이네요.

토라시 치사토루 : 카레 안 좋아하는디...

히네노야 나오미 : 그냥 좀 먹어. 아니면 내가 만든 거 또 먹고 싶어?

토라시 치사토루 : 으, 으음~! 카레가 참 맛있게 생겼구먼!

안색이 조금 나빠진 채 카레를 퍽퍽 열심히 뜨고 있는 토라시를 뒤로 한 채, 카레는 조금만 뜨고 샐러드를 많이 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배도 안 고프고, 카레를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내 자리로 돌아와 카레를 한 숟가락 가득 떴다. 맛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맛있다고 하기도 애매한 맛이었다.

이레나 디너아 : 윽.. 오늘 저녁은, 무어냐!

이레나가 배를 감싸 안고 고통스러워하며 들어왔다. 아무도 이레나의 말에 대답하지 않자, 이레나는 내 접시를 흘깃 보고는 신난 듯 주방으로 걸어갔다.

나는 최대한 난을 여러 번, 그리고 한 번도 안 씹은 부분이 없을 때까지 꼭꼭 씹어먹으며 시간을 때우려고 노력했다. 식사를 빨리 끝마쳐봤자 할 게 없어서였다.

니에류우 텐 : 잘 먹었습니다.

니에류우는 접시를 들고 일어나며 말했다. 나도 식사를 거의 끝내던 참이었기에 그를 따라 주방에 접시를 놓았다.

니에류우 텐 : 아, 센이시. 잠깐 시간 될까?

센이시 히치카와 : 음? 당연하지. 넘치는 게 시간인데...

니에류우 텐 : 개인실로 따라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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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니에류우를 따라서 그의 개인실에 입성했다. 아무리 초고교급 수사반이라고 해도 방에 수갑을 군데군데 걸어놓다니, 정말 기분 나쁜 인테리어였다.

니에류우 텐 : 조금 기분 나쁘지? 솔직히 나도 그래. 모노키츠네는 대체 왜 이렇게... 아무튼, 편히 앉아.

센이시 히치카와 : 그런 건 딱히 아닌데. 그래서... 왜 불렀어?

니에류우는 잠시 시선을 아래로 했다가, 다시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니에류우 텐 : 다름이 아니라, 조금 불편해.

센이시 히치카와 : 응? 뭐가?

니에류우 텐 : 솔직히 코이노가 말할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단 말이야. 근데 오늘 밤이 꺼림칙한 건 솔직히 우리 다 느끼는 거잖아. 그래서 불침번도 선다고 한 거고. 하지만... 역시 오늘 밤은 불편한 게 맞아.

나는 불침번을 누구로 할지 정할 때 니에류우도 손을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센이시 히치카와 : 확실히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물론 불안하지. 그렇지만... 이렇게 둘이서만 얘기해야 할 일이 또 있는 거야?

니에류우 텐 : 역시 날카롭구나. 지금 우린 탈출구도 단서도 못 찾은 상태이지... 근데, 만약에. 진짜 정말 만약에 이미 탈출구가 있다면 어떨 것 같아?

나는 순간적으로 니에류우의 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탈출구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더 물을 것도 없이 단체 채팅방에서 작전을 짜거나,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니에류우는 그 말 직전 '만약에'라는 가정을 덧붙였다. 심지어 강조 표현을 두 개씩이나 넣어서. 그렇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생각에 진전이 없는 것 같아 나는 결국 니에류우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센이시 히치카와 : 무슨 말이야?

니에류우 텐 : 그냥 가정이야. 그렇다면 어떨까... 하는 약간의 희망...이랄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니에류우는 입을 다물고 시선을 다시 아래로 내렸다.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5초 정도 기다리자, 그는 결심한 듯 풀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니에류우 텐 : 그러니까,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불안하니까 하는 말일뿐인데...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죽어도 무너지면 안 돼. 네가 무너지면 살아남는 애들이 기껏해야 나, 타라, 코이노 정도일 텐데... 그렇게 되면 흑막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잖아, 맞지?

센이시 히치카와 : ...그래. 알았어. 그럴 일이 없으면 제일 좋은 거지만.

니에류우 텐 : 그거야, 센이시! 고마워.

니에류우는 내 오른손을 양손으로 감싸고는 고맙다고 연신 인사했다. 조금 부담스러웠고 오른손이 뜨거웠지만 싫진 않았다. 오히려 조금 가까워지고 오늘 밤에 대한 불안이 감소된 느낌이었다.

니에류우 텐 : 몇 시지? 앗, 벌써 8시 반이네. 얘기해 줘서 고마웠어, 센이시.

센이시 히치카와 : 그럼 난 가볼게. 나도 고마웠어.

니에류우 텐 : 잘 가. 그리고 잘 자고.

나는 조금 들뜬 마음을 안고 니에류우의 개인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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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나는 밤 10시에 나오는 밤 방송을 들은 적이 없다. 당연했다. 원래 9시에 자는 것으로 생활 패턴이 맞춰져 있었다. 더 일찍 자면 더 일찍 잤지 더 늦게 자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약간의 일탈로 10시까지 버텨보려 한다.


타라 이루카나 / ㅋㅋㅋㅋㅋ 미친 거 아님?

시나하라 아쿠아 / ㅋㅋㄱㄲㅋㄲ 아 진짜??ㅋㄱㄲ

에스티 / 아니 나 진지하다고

에스티 / 진짜라니까


역시 시간 때우는 데는 약간의 만담이 최고다. 모노패드에는 유튜브도 SNS도 뭣도 없기 때문에 제일 재밌는 것이 채팅이다.

10시까지 버티기 위해 사람을 모았다. 물론 만담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만.(코이노 같은 애가 있는 방에서 떠든다면 코이노가 내일 아침 우리를 곤죽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그렇게 타라, 시나하라, 에스티, 토라시, 하나리, 그리고 내가 모였다.


토라시 치사토루 / 진??? 지???

토라시 치사토루 / 소꿉친구한테 에스퍼라고 뻥쳤다가 걸린 게 진지한 얘기라고????ㅋㅋㅋㅋ

하나리 에린 / ㅋㅋㅋㅋ인정

에스티 / 역시 그때 어떻게 마음을 읽었어야 했어

시나하라 아쿠아 / 되겠냐곸ㅋㅋㅋ

센이시 히치카와 / ㅋㅋㅋㄱㄲㄱㅋㅋㅋ


사실 난 그냥 보고만 있는 편이 편하지만, 가끔 웃는 채팅도 쳐줘야 한다.


타라 이루카나 / 어 님들

하나리 에린 / ㅇ?

에스티 / ㅇㅇ

타라 이루카나 / 지금 9시 59분임ㅋㅎㅋㅎ


타라의 채팅을 보고 시계로 눈을 돌려보니 진짜였다.


시나하라 아쿠아 /

센이시 히치카와 / 드디어 10시 방송 들어보네

토라시 치사토루 / 님도? 나도 처음 들음


그렇게 나는 드디어 10시를 맞았다.

모노키츠네 : 아- 아- 여러분, 밤이 되었습니다아아! 오후 10시에요오오! 지금 시간부로 식당 및 몇몇 시설이 폐쇄됩니다아아. 그럼, 좋은 밤 되시기이일...


하나리 에린 /
자러 가자

토라시 치사토루 / ㅇㅇ

에스티 / 굿밤

타라 이루카나 / 바이

센이시 히치카와 / 잘 자

시나하라 아쿠아 / 굿나잇


나는 침대에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원래 자는 시간에서 1시간이나 늦은 시간. 피곤함 때문인지 생각을 정리하는 버릇도 잊어버리고 난 그대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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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키츠네 : 인간은 무조건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죠오오. 다만 학원장 모노키츠네는 여러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존중합니다아아. 인간의 본능대로 남의 의견을 철저히 물어뜯고 짓밟아주세요오오! 여러분의 의견을 내세우기 위해서 말이죠오오! 네, 아침이 밝았습니다아아! 모두들 즐거운 살인학급생활 되세요오오.

오늘도 이 목소리에 눈을 뜬다. 중요한 날이다. 과연 어젯밤에 아무 일이 없었을까? 제발 그러기를, 모두가 멀쩡히 있기를 하고 수차례 되뇌며 나는 식당으로 향했다.

하나리 에린 : 히치카와! 좋은 아침.

센이시 히치카와 : 하나리도 좋은 아침이야.

난 하나리와 인사를 나누고 아침밥을 먹으러 주방으로 갔다. 오늘 아침은 타코야키. 아침밥보단 간식에 가까웠다.

그렇게 앉아서 가쓰오부시를 타코야키 위에 올려 먹음직스럽게 한 입 하려는데,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모노키츠네 : 안녀어엉.

오마지나 하나시 : 음... 온눌 저심믄 여우 고긴까?

나미유 카츠키 : 오마지나 님, 음식은 다 씹고 얘기하시는 게 좋아요.

센이시 히치카와 : 잠깐만, 모노키츠네가 갑자기 등장한 건 이유가 있을 거야. 들어보자.

내가 중재하자, 모노키츠네는 기다렸다는 듯 짝 하고 손을 마주쳤다. 그리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모노키츠네 : 너네드으을... 내 아침 방송의 의미를 알아채지도 못하고 여기서 한가하게 밥이나 먹고 있다니이이... 완전 유죄야아아!!

후카바야시 츠이키 : 아침 방송? 그 남의 의견이니 뭐니 짓밟아라 뭐시기 했던 거? 그거 그냥 쌉소리 아니었어?

모노키츠네는 후카바야시의 말에 몸의 절반 중 어두운 쪽의 빨간 눈을 빛내며 화를 냈다. '쌉소리'라는 말에 화가 난 건진 모르겠지만 확실히 아침 방송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모노키츠네 : 후카바야시 야아앙!! 쌉소리라니! 깊은 뜻이 담겨있었다구우우.

히네노야 나오미 : 그래서 그게 뭐냐고.

에스티 : 그래. 빨리 말하고 꺼져.

모노키츠네는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우뿌뿌 하는 소리가 심히 기분이 나빴다. 모노키츠네는 자신이 할 말에 만족한 듯 웃음을 내려놓지 않은 채로 말했다.

모노키츠네 : '남의 의견을 철저히 물어뜯고 짓밟아라'...
학급재판을 준비하라는 소리인 게 당연하잖아.

그 순간, 식당의 모두는 얼어붙었다. 모노키츠네의 말을 단순 장난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웠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두가 한 가지 소름 끼치는 사실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센이시 히치카와 :
니에류우.... 어디 갔어?

이레나 디너아 : 아... 그럴 리가..!!

시나하라 아쿠아 : 뭐가 됐든 빨리 찾아야 해! 긴급상황에선 보건실을 열어준다고 했으니까 위독해도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우리 모두는 꺼림칙함을 버리지 못하고 식당을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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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유레이 : 세 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교실 쪽, 한 팀은 강당 쪽, 한 팀은 개인실 쪽을 통틀어 창고, 식당 등을 수사한다! 급하니 대충 나눈다. 개인실 쪽은 좁으니 교실 쪽에 인원을 많이 투입하도록!

유레이의 지시에 따라 모두가 움직였다. 유레이, 히네노야, 에스티, 하타미츠 등이 개인실 쪽에 남고 그를 제외한 전원이 교실 쪽으로 몰려갔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일단 식물정원, 매점부터 수사했다. 아무도 없었다. 평범한 분위기가 반길 뿐이었다. 토라시는 화장실을 살피러 빠졌고, 우린 1-A 교실에 다다랐다.

내가 앞장서 문을 열기 위해 시도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너무 급해서 그런 것인지, 문이 잠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센이시 히치카와 : 니에류우!! 니에류우!! 거기 있어!? 대답 좀 해줘!!

문에선 니에류우의 목소리 대신 철컥철컥 소리만 들려왔다.

나미유 카츠키 : 교실의 문은 나무 걸쇠로 잠기는 거였죠.. 걸쇠가 잠겼나 봐요! 어떡하죠?!

후카바야시 츠이키 : 잠깐만! 다들, 비켜! 나무 걸쇠면 내가 잘하면 부술 수 있을 것 같아!

오마지나 하나시 : 후카바야시! 괜찮겠어? 단단할 텐데..?!

후카바야시는 대답 대신 어깨로 문을 쳐내기 시작했다.

후카바야시 츠이키 : 젠장..!! 나 혼자선 안 되겠어. 선장 불러와!

나미유 카츠키 : 아, 알겠어요!

나미유는 전속력을 다 해 뛰어갔다. 7초 정도 기다리니 유레이를 포함해 개인실 쪽에 있던 모두가 급히 뛰어왔다. 나미유는 강당 쪽의 인원도 부르러 갔고, 유레이와 후카바야시가 힘을 합쳐 문을, 정확히는 걸쇠를 부수기 시작했다.

캡틴 유레이 : 조금만 더 하면 되겠어... 으윽..!!

유레이와 후카바야시가 마지막 힘을 다해 문을 쳐내자, 뚜둑 소리와 함께 문이 급속도로 열렸다. 갑작스럽게 눈에 찾아온 교실의 전등의 섬광 속에서 내가 본 것은...

.......

그건.......

그것은........

.......



소름 돋게도 새빨갛고 붉은색으로 뒤덮인 바닥.

강렬하게 진동하는 기분 나쁜 냄새.

내 동공을 통해 각막 속으로 빨려 들어온 장면.

누군가 비웃는 듯한...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는 환청.

척추를 타고 온몸에 전해지는 오한.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그것은....



초고교급 수사반, 니에류우 텐의 시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