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결국, 학급재판이 시작되었다. 최악의 상황에 다다랐다. 정말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상황. 우린 분명 서로 신뢰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와버린 걸까? 사람이 죽었고, 신뢰는 산산조각 나 바닥에 떨어졌으며 이제 우린 서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믿기 위해서 의심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느꼈다. 반쯤만 말이 되는 소리인 것을. 그 말 자체는 맞다고 봐도 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의심하는 행동이 무조건 믿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라는 관점이었다. 정사각형은 직사각형이지만, 직사각형은 정사각형이 아닌 것처럼, 이 문장 또한 훌륭한 단어 간의 모순을 지니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래. 그 말처럼 믿기 위해서 의심하자. 진실을 밝혀내자. 소중한 친구이자 동료를 두 명씩이나 죽인 검정을 알아내자. 알아내고 난 후에는?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알아낸 뒤에 할 일을 알아내는 것도 또 하나의 숙제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이 재판장은 상당히 구조가 특이했다. 보통 재판장은 검사와 변호사, 피고인, 판사가 각각 나뉘어있는데, 학급재판장은 마치 모두가 검사이자 변호사이자 피고인이자 판사라는 듯한 구조였다.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센이시 히치카와 : 일단, 끔찍한 소리라는 건 알지만 앞으로 몇 번 더 오게 될 수도 있으니 구조를 살펴두는 게 어때?
토라시 치사토루 : 센이시 말에 동의한다.
우리는 재판장을 둘러보았다. 둥근 모양으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우리의 자리. 왕좌처럼 생겨서 불쾌한 모노키츠네의 자리. 그리고 눈앞의 스크린과 모노키츠네의 뒤에 있는 또 하나의 스크린.
아마 예상하건대 중앙에 달린 스크린은 자료를 보는 용도일 것이다. 물론 예상일 뿐이니 틀릴 가능성도 충분하지만. 모노키츠네 뒤에 있는 스크린은 아직 뭔지 잘 모르겠다.
천천히 훑어가며 확인하고 있는데, 후카바야시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후카바야시 츠이키 : 재판장 구조는 둘째 치고... 모노키츠네. 물을 게 있는데.
모노키츠네 : 으으으음? 왜애애? 질문은 최대한 간결하게 해 줘어어.
후카바야시 츠이키 : 그럼 네 글자로 해도 되지? 이거 뭐야?
후카바야시의 검지손가락이 바로 옆 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후카바야시의 손가락 끝으로부터 그 자리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상상치도 못한 불쾌감을 보게 되었다.
니에류우의 얼굴에, X자가 크게 쳐져있는 사진. 우푸푸 하는 소리에 나는 다시 모노키츠네를 돌아보았다. 모노키츠네는 열심히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명복을 빌어주지도 못할 망정 모욕을 하다니. 쓰레기 같은 놈.
캡틴 유레이 : 뭐냐? 고인모독이냐?
모노키츠네 : 아아아~ 그건요오오. 고인모독이 아니고 오히려 고인 존중이지이이! 죽었다고 해서 학급재판에 참여도 못하면 불쌍하잖아아. 영혼이라도 참여하라는 의미에서 준비한 영정사진이야아아. 저쪽에 타라 양 것도 있는데에에!
모노키츠네가 손톱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시나하라 아쿠아 : 으으... 뭐야, 불쾌해...
에스티 : 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거야?
모노키츠네는 서둘러 자신을 비난하는 여론을 중단시키려고 애를 썼다.
모노키츠네 : 잠깐마아안! 언제까지 시시한 영정사진 얘기 할 거야아아? 슬슬 살인사건에 대해 논의해 주지 그래애애?
코이노가 기다렸다는 듯이 목을 두 번 가다듬었다. 이제 정말 판이 펼쳐진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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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 미노리 : 자, 언제까지나 시간을 끌 수는 없으니까 얘기를 나눠보자고. 난 일단 먼저 니에류우의 사인에 관해 얘기하고 싶은데.
히네노야 나오미 : 분명히... '왼쪽 두부 가격'이라고 모노키츠네 파일에 적혀있었어.
나는 니에류우의 시체의 모습을 되짚어보았다. 왼쪽 머리에서 흐르는 피. 모노키츠네 파일에 틀린 건 없다고 보는 게 마땅할 것이다.
이레나 디너아 : 아, 나도 봤어. 여기 의문점이라도 있는 거야?
코이노 미노리 : 여기서 내가 짚어보고 싶은 건 바로 이거야. 흉기가 뭘까?
센이시 히치카와 : 흉기...
흉기. 즉, 니에류우를 죽인 도구. 머리를 맞았다고 했으니 각목이나 망치 같은 물건인가? 나는 이 생각을 즉시 철회했다. 각목이나 망치 같은 것은 전부 태워버려 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미유 카츠키 : 근데요... 저희 창고에서 흉기가 될 만한 물건은 다 태워버리지 않았던가요? 그중에 망치 같은 것도 있고요.
나미유가 내 생각을 읽은 듯 정확히 발언해 주었다.
에스티 : 이렇게 큰 단위로만 생각하다간 끝이 안 날 것 같은데. 우리 이렇게 해 보자. 각자 생각나는 걸 막 던지는 거야. 그중 모순을 찾아 제외하는 거지. 어때?
에스티의 제안은 꽤 괜찮아 보였다. 다른 아이들도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아. 세상이 돌기 시작한다... 눈앞이 핑 돌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다. 이제부턴 모순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내 목적을 한번 더 새겼다.
토라시 치사토루 : 흉기 관련 단서는 없었나?
하타미츠 코지 : 모노키츠네 파일에는 뭐가 없었습니다. 분명 사인, 사망 시각, 발견 장소 등만 적혀있었죠.
코이노 미노리 : 개인실의 공구 세트. 거기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지.
엇..? 공구 세트... 라.
나는 다시 한번 모노키츠네 파일을 떠올렸다. 왼쪽 두부 가격. 1-A 교실. 새벽 4시경. 흰색 가루?
내 기억에 따르면, 개인실 공구 세트에는 육각렌치. 몽키스패너, 주사기 등이 있었을 것인데... 역시 아무리 봐도 흰색 가루가 나올만한 건 없지 않나? 찾았다. 모순. 난 뿌듯하게 외쳤다.
센이시 히치카와 : 아니. 그건 틀렸어, 코이노.
코이노는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굳은 표정이었다. 바로 옆 자리라 조금 무서웠지만 코이노는 금세 원래 표정을 되찾았다.
코이노 미노리 : 오, 기억상실증. 이제 논파도 하네? 들어나 보자. 왜 틀렸는데?
센이시 히치카와 : 모노키츠네 파일이야. 기억해 봐. 분명히 '상처 부위에 흰색 가루가 묻어있다'라고 적혀있었어. 그 흰색 가루는 뭔가 바스러진 모양새였고. 하지만 공구 세트에는 흰색 가루가 나올만한 물건이 없잖아.
코이노는 실실 웃으며 날 다시금 돌아보았다. 마치 시험이라도 해 본 듯이. 단순 시험이었다면 조금 뻘쭘하겠지만... 기분은 좋겠지.
코이노 미노리 : 그러면 문제는 이거네. 창고도 아니고, 개인실도 아니야. 그렇다면 흉기의 출처는 어디일까?
나미유 카츠키 : 출처라면... 흉기 같지 않은, 일상적인 물건을 흉기로 사용했다는 것이 적절하겠죠. 예를 들어 부엌에서 가져온 흉기라든가 말이에요.
이레나 디너아 : 흠...
이레나는 턱을 손으로 쥐고 고민했다. 나도 고민이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갑자기 이레나가 턱을 쥐고 있던 손 그대로 반대쪽 손을 때렸다.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캡틴 유레이 : 이레나, 뭔가 알아낸 거라도 있는 건가? 그렇다면 알려줘라.
이레나 디너아 : 나, 알아낸 것 같아! 나미유의 '부엌'이라는 말을 듣고 떠올랐어. 부엌에서 구해온 흉기가 맞을 거야. 내 추측이 맞다면 말이지.
나미유 카츠키 : 네..? 부엌에서 구해온 흉기라고요?
나미유는 자신이 말을 하고도 맞는 줄 몰랐는지 많이 놀랐다. 이레나는 검지손가락에 힘을 주어 쫙 피고는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말했다.
이레나 디너아 : 바스러진 흰색 가루... 부엌... 뭐 떠오르는 거 없어?
하타미츠 코지 : 접시군요..!
하타미츠가 박수를 짝 쳤다.
접시. 바스러진 흰색 가루도 나올 수 있고, 머리를 때리기에도 적합한 물건. 아마도 하타미츠의 말, 이레나의 아이디어는 정황 상으로 봤을 때 맞는 것 같았다.
코이노 미노리 : 완전히 다 글러먹은 건 아니군. 접시. 접시... 그래. 좋아.
이로써, 하나의 의문이 풀렸다. 이제야 한 걸음 내디뎠다. 아직도 많은 의문이 남아있지만, 걸음마를 뗐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니까. 이대로 계속 풀어나가면 되겠다.
센이시 히치카와 : 맞는 것 같네. 고마워, 이레나.
의문이 풀렸다고는 해도, 이제 뭘 논의해야 하는 거지? 이 모든 일은 범인을 찾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범인은 빠져나가기 위해 트릭을 짠다. 트릭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범인은 증거를 남기고, 그 증거를 가지고 우리는 서로 의심한다. 그렇다면... 그 트릭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겠네.
센이시 히치카와 : 자, 이제 한번 트릭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후카바야시 츠이키 : 트릭? 트릭 오알 트릿(Trick or Treat)? 간식 말이냐?
히네노야 나오미 : 간식은 트릿 쪽이지만... 역시 밀실 트릭 말하는 거지?
히네노야가 짚어주자, 후카바야시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이번 사건에서 니에류우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는 1-A 교실. 그리고 교실은 후카바야시와 유레이가 걸쇠를 부수기 전까지는 밀실이었다. 아까 조사할 때도 느낀 의문이지만, 범인은 어떻게 문을 잠근 걸까?
하타미츠 코지 : 범인이 문을 잠근 방법이겠죠. 그렇다면 이번에도 되는대로 얘기를 나눠봅시다.
하타미츠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다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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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미츠 코지 : 교실은 문 두 개 다 안에서 잠그는 식이었죠? 밖의 잠금장치는 없었습니다.
시나하라 아쿠아 : 안에서 문을 잠그고 아무도 모르게 탈출하는 건 불가능했겠지... 아마 범인은 밖에서 문을 잠갔을 거라고 생각해.
이레나 디너아 : 근데 초능력자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불가능하잖아!
토라시 치사토루 : 상식을 따지면 여기 있는 거 자체가 이상하지.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고..! 특수한 도구를 사용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번엔 모순이라고 할만한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 애초에 모순을 찾는 일에만 연연할 필요는 없지. 그렇다면 상대의 의견에 찬성하며 그쪽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향으로 해 볼까?
센이시 히치카와 : 토라시, 그 말에 찬성하고 싶어.
토라시 치사토루 : 엣, 고맙다.
센이시 히치카와 : 창고나 매점에는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들어차 있었지. 우리가 본 물건 중에 문 밖에서 뭔갈 하면 안의 걸쇠에 영향을 주는 물건이 있을까?
예를 들어 실이라든가 말이다. 친구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었기에 그 말은 삼켜버렸다.
이레나 디너아 : 말이 되냐! 밖에서 뭘 한다고 안에도 영향을 미치는 도구가 존재하긴 해? 초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센이시 히치카와 : 과연 그럴까?
이레나는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보았다. 창고에 답이 있다.
센이시 히치카와 : 창고야. 창고에 뭐가 있었는지 되는대로 떠올려 봐.
이레나 디너아 : 창고? 잠깐만. 시럽, 설탕, 으음...
시나하라 아쿠아 : 넌 먹는 것만 생각 나? 실, 나무 막대기, 자석 등 트릭에 쓰일만한 것도 있었잖아.
이레나 디너아 : 그랬나?
이레나가 머쓱한지 볼을 긁적였다.
그나저나 시나하라가 말한 도구들 중 무엇이 트릭에 쓰였을까? 밀실 트릭에 관한 증거는 더 없으려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코이노가 내 어깨를 살짝 쳤다. 뭔가 말할 것이 있다는 뜻일 거다.
센이시 히치카와 : 코이노? 왜?
코이노 미노리 : (이거 알지? 난 말하기 귀찮으니 네가 말해.)
코이노가 뭔가를 양손으로 잡고 옮기는 시늉을 했다. 아까 교실 조사를 할 때 했던 그 제스처다. 책상을 옮기는 것. 더 정확히는 문 옆으로 책상을 옮기는 행동을 의미하는 거겠지.
센이시 히치카와 : 아, 알았어.
센이시 히치카와 : 니에류우의 시체가 발견된 교실에는 위화감이 있었어. 책상 위치가 뒤죽박죽이 되어있었지. 그중에 나랑 코이노가 수상하게 여기는 건 문 바로 옆에 붙어있는 책상이야. 이것에 대해서 논의해 봤으면 해.
우리는 다시 한번 논의를 시작한다.
시나하라 아쿠아 : 문 옆에 책상이라니... 처음 시체를 발견했을 때 정신이 없어서 못 봤어.
나미유 카츠키 : 책상을 옮겼다고 해도... 밀실 트릭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에스티 : 관련이 있긴 할 텐데. 아까 논의했던 도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답을 에스티가 대신 내주었다. 그거야! 통쾌해서 속으로 크게 외쳤다.
센이시 히치카와 : 에스티 의견에 찬성이야.
도구.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 막대기, 자석. 그중에 책상과 연관성이 있는 건...?
역시 모르겠다. 책상이 뭘 어쨌다는 거야? 문 옆으로 옮겼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애초에 우린 바깥에서 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하지만 분명 코이노도 무슨 생각이 있어서 알려준 것일 것이다. 일단 지금은 코이노를 믿어보자. 생각을 끝마쳤다.
캡틴 유레이 : 도구? 도구라...
하타미츠 코지 : 으음... 생각이 날 것도 같은데요...
코이노는 피식 웃었다.
코이노 미노리 : 그렇다면 또 논의를 해야겠지. 뇌 속에 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파헤쳐보자고. 자.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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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나 디너아 : 그러니까 말했잖아! 가능한 도구는 없다고.
히네노야 나오미 : 아니, 이레나. 생각을 좀 해보자고.
캡틴 유레이 : 이런 가능성을 제안하고 싶다. 나무 걸쇠에 실을 묶고, 문을 닫은 뒤 바깥에서 실을 올리면 나무 걸쇠도 따라 올라가지 않겠는가?
토라시 치사토루 : 나무 걸쇠의 무게 때문에 불가능하다. 바깥에서 실을 끌어올려도 나무 걸쇠는 아래 남아있을 거다.
나미유 카츠키 : 하지만... 다른 가능성이 있나요?
다른 가능성이라. 아마... 있을지도 모른다.
나무 막대는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고, 자석은 어떻지? 일단 문 옆 책상에 자석을 놔두고, 바깥에서 문을 닫고 다른 자석을 갖다 붙이는 건 가능할까? 나는 아무렇게나 생각하다가 그럴싸한 가설을 발견하고 말았다.
센이시 히치카와 : 나미유, 아직 판단하기는 일러.
나미유 카츠키 : 센이시 님, 그렇지만 나무 막대나 자석 같은 도구는 사용이 힘들어 보이는데요.
코이노 미노리 : 과연 그럴까?
코이노가 말을 가로챘다. 나미유는 살짝 당황한 눈치로 말했다.
나미유 카츠키 : 무슨 말씀이신지..? 나무 막대와 자석을 이용했다는 건가요?
코이노 미노리 : 정확히는 둘 중에 하나만 쓴 거야. 바깥과 안을 간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도구...
센이시 히치카와 : 자석이겠지?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어디서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기분은 나빴지만 지금 따질 건 아니었기에 소리가 발생한 곳을 찾아 머리를 돌렸다.
이레나 디너아 : 그래, 그거까진 이해했어. 그런데 그게 어쨌다고? 자석으로 뭘 어떻게 한다는 거야? 설명 좀 해줄래!
코이노 미노리 : 아이고. 그러지. 책상을 문 옆으로 옮긴다. 자석을 놓는다. 밖으로 나간다. 문을 닫는다. 다른 자석을 문에 갖다 댄다. 그러면 자석이 붙는다. 밖에서 자석을 위로 올려 걸쇠를 밀어 넣는다. 문이 잠긴다. 돌아간다.
토라시 치사토루 : 그거라고? 영 찝찝한디... 애초에 자석이 그 두꺼운 문 사이로 붙을 수는 있는 건가? 그리고, 문이 잠기고 나서는 교실 안에 있는 자석은 어떻게 처리하는데?
토라시의 의문은 합리적이다. 당연히 그렇게 느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도 미리 생각해 두었다.
센이시 히치카와 : 일반 자석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토라시 너도 봤었어. 다 같이 창고를 수색할 때 이레나는 자석을 건드리기는 커녕 오히려 조심했는데 자석에 손을 찧였던 걸 말이야. 그러니 이 자석은 자성이 엄청나게 센 자석이라는 거지.
하타미츠 코지 : 교실 안에 남은 자석은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혼란을 틈타 살짝 주우면 되겠죠.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성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좋았어. 드디어 몇 발자국을 더 따라갔다. 하지만 검정은 저 멀리서 우리가 알아내지 못하기를 속으로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하지만, 검정이 죽는 것도 물론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발자국을 따라 뒷덜미를 낚아채야 한다. 그 뒷덜미의 주인, 즉 검정을 잡으려면 다음 과정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교칙에 따르면 두 피해자 중 더 먼저 죽은 니에류우를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할까? 두 범인이 동일범일 가능성을 따져 보자. 그렇다면 동일범이 아닐 가능성은? 그것도 일단 말해 보자.
센이시 히치카와 :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검정을 잡는 거야.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타라의 사건에 대해 논의해 보자.
히네노야 나오미 : 음? 니에류우가 먼저 죽었으니까 니에류우 사건만 논의해도 되는 거 아니야?
코이노 미노리 : 아니. 동일범이라면 니에류우를 죽인 뒤 타라를 죽였겠지? 타라는 기절시키거나 했을 테고. 그렇다면 그 사이 범인의 정확한 행적을 알아내면 범인을 알기 더 쉽겠지.
코이노 미노리 : 동일범이 아니라면 니에류우를 죽인 범인과 타라를 죽인 범인이 따로 있는 건데, 타라가 불침번인데 더 늦게 죽었으니 둘이 뭔가 작당모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타라가 어디 간 사이 이때다 하고 나오진 않았겠지. 니에류우를 죽인 놈만 범인 취급이니 타라를 죽인 놈이 범인을 말하면 해결이고.
후카바야시 츠이키 : 아오... 말이 어렵다.
후카바야시가 왼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내가 생각해도 머리로만 이해할 수 있고 말로 하면 이상한 설명이다.
코이노 미노리 : 그렇다면, 타라를 죽인 놈은 자백을 해 봐. 질타는 받겠지만 죽지 않으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코이노가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 모두 서로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행동도 말도 하지 않았다.
나미유 카츠키 : 그렇다면... 동일범으로 확정인가요?
센이시 히치카와 : 아마도 그렇겠지.
에스티 : 아아! 잠깐. 나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에스티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에스티 : 아마 타라가 범인에게 습격을 당한 후 니에류우를 죽였을 거 아냐? 그러니까... 유레이. 너는 수상한 낌새 못 느꼈어?
에스티가 유레이 쪽을 쳐다보았다. 유레이도 에스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레이는 당황한 채 말을 꺼냈다.
캡틴 유레이 :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아무런 낌새도 못 느꼈다.
히네노야 나오미 : 하, 하긴... 타라가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데 유레이가 몰랐을까? 유레이가 졸았던 게 아닌 이상은...
히네노야가 하다가 만 말은 나도, 아니 우리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유레이가 타라를 기절시키고 니에류우를 죽인 것 아닌가?' 해 볼만한 의심이다. 타라가 기절할 때 소리가 난다면 분명 유레이가 들었을 것인데...
캡틴 유레이 : 지금, 나를 의심하고 싶다는 건가? 정말로 나는 니에류우가 죽은 시간에도 타라가 죽은 시간에도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못했다. 졸지도 않았고. 애초에 졸 수도 없다.
'못 들었다' 라... 거짓말로 하기는 딱 좋은 말이다.
후카바야시 츠이키 : 와! 존나 수상하다!
하타미츠 코지 : 후카바야시 씨. 그런 발언은 자중해주시죠.
후카바야시 츠이키 : 자정? 젠장!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네!
후카바야시의 말에는 지적할 것이 많아도 너무 많았지만, 하타미츠가 중재해 준 덕에 논의가 수월해졌다.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보자 유레이가 여전히 외치고 있었다.
캡틴 유레이 : 아무튼, 나는 진짜 범인이 아니다..! 믿어줘..!
유레이는 진중한 말투까지 버리고 간절히 말했다.
시나하라 아쿠아 : 그런데... 범인이 유레이면 꼭 티 나게 타라를 죽였을까 싶긴 하네. 어차피 타라와 유레이는 서로를 볼 수 없으니 유레이 쪽에서 무슨 계획을 진행해도 몰랐을 텐데.
하타미츠 코지 : 으음... 유레이 씨의 무죄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는데요... 어차피 다 주무시고 계셨을 테니 말도 안 되지만요.
'무죄를 뒷받침하는 누군가'... 내 바로 옆에 한 명 있긴 하다. 코이노는 내가 자신을 흘깃 보는 기척을 느끼고는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내가 다시 코이노를 보았을 때는 눈은 감고 있었지만, 오묘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센이시 히치카와 : 하타미츠. 유레이의 무죄를 입증하는 증인이 있어.
하타미츠 코지 : 네..? 유레이 씨가 불침번을 설 때는 모두 주무시고 있었을 텐데요...
센이시 히치카와 : 코이노. 지금, 네 채팅 기록의 의미를 밝혀. 재판 때 말해 주기로 했잖아.
코이노 미노리 : 설명은... 재판에서.
나는 코이노와 조사를 할 때 그녀가 이렇게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코이노는 대답이나 몸짓으로 알겠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생략하고 바로 모노패드를 꺼내들었다.
코이노 미노리 : 음, 바로 읽으면 되지? 참고로 이건 나와 타라의 채팅 기록이고 타라가 죽기 하루 전이야.
코이노는 화면에 손가락을 갖다대고 아래로 쓸어내렸다. 화면은 좀 더 과거의 내용을 비추었다.
코이노 미노리 / 그럼 내가 감시 좀 해줄게
타라 이루카나 / ㅇㅋㅇㅋ 감사
타라 이루카나 / 아 밤시간 됨 잘 자셈
코이노 미노리 / 안 잠
코이노 미노리 : 못 따라온 띨빵이들을 위한 정리. 나는 어젯밤에 안 자고 선장을 감시했다. 그리고, 선장 저 새끼 진짜 아무것도 안 하더라. 좀 재밌는 행동을 해야 밤새 버티기 쉽지. 그냥 서있기만 했어.
캡틴 유레이 : 날 몰래 감시했다는 것이 껄끄럽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무죄를 입증했군. 고맙다. 근데 왜 감시했나?
코이노는 뭔가 웃긴 것을 생각한 듯이 와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바로 옆에서 그래서 깜짝 놀랐지만 그보다도 왜 웃었는지가 궁금했다. 나는 코이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호기심을 해결하려 애썼다.
코이노 미노리 : 이유는 간단하지.
코이노 미노리 : 존나게 못미더우니까!
분량이 애매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