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쾅,
그 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나의 유일한 행복의 죽음을 그제야 깨달을 뿐, 급속도로 닥쳐오는 무력감에 항복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제발 꿈이기를, 일어난 일들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빌었지만.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아버지의 말이 다 맞았다. 과거를 스스로 바꿀 거라던 바보 같은 내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입꼬리를 따라 살짝 들뜬 광대 위로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날 향한 온갖 삿대질이 날아왔다. 따가웠다. 슬펐다. 그렇지만 허무했다. 분노했다. 억울했다. 억울하면 뭐 할 건데, 다 네 탓이잖아, 나야.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씩 뇌에 들어왔다. 모두 날 경멸하고 있구나. 난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으니까. 내 약간 뿌연 눈물의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믿을 작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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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나 디너아 : 내가 범인이라고?
이레나의 표정에는 놀람, 두려움, 황당함 등의 감정들이 골고루 섞여 나타나있었다. 갑자기 살인자로 지목당했을 때 누구나 지을 수 있을 듯한 표정이었다.
코이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팔짱을 꼈다.
코이노 미노리 : 그야, 너만 범행이 가능하잖아?
이레나 디너아 : 고작 보건실에 들어가 봤고, 너한테 안 보이는 위치에 개인실이 있다는 이유로 나라는 거야? 내가 그 둘을 왜 죽이겠어?
센이시 히치카와 : 지금 동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난 그저 네가 밤 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묻고 있는 거야.
이레나 디너아 : 잤다니까?
이레나는 금세 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꾸고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굳히기 시작했다.
하타미츠 코지 : 이레나 씨, 그러면 하나만 묻겠습니다. 당신이 범인이 아니라면, 그 외에 누가 범인일 수 있죠?
이레나 디너아 : 아까 증인 있었던 사람 빼고 모두 다 가능하지. 시험 삼아 보건실에 들어가 본다는 가능성을 왜 배제하고 있는 거야? 가능성이 적긴 하지만.
나미유 카츠키 : 정정해 주시죠. 가능성이 그냥 적은 게 아니라 희박한 거예요.
나미유가 예리하게 지적하자 이레나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허리에 양손을 짚었다. 뭔가 큰 것이 몰아칠 것 같았지만 예상외로 이레나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이레나 디너아 : 희박해도 있긴 있는 거잖아? 애초에 여기에서 나가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른 검정이, 나가기 위해서 목숨을 건 검정이 고작 아플 거라는 이유로 보건실에 안 들어가 본다? 조금 이상하지 않아?
이레나가 최소한의 논리로 말은 되는 문장을 늘어놓자, 갑자기 어딘가에서 아까 들어보았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마지나 하나시 : 후후후, 오늘 웃긴 일이 왜 이렇게 많지? 뭐, 코미디언 모임이라도 되는 건가?
하나리 에린 : 아, 또 너냐? 내가 조용히 하라고 안 했던가?
오마지나 하나시 : 당신은 큰 거 한 방 터트렸으면 끼어들지나 마시고요. 진짜 중요한 얘기니까. 일단, 너 님의 말에는 큰 모순이 있는데,
오마지나가 이레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레나가 표정을 썩힌 채 오마지나의 시선을 피하자, 오마지나는 눈빛을 거두고 은은한 광기가 도는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오마지나 하나시 : 내가 범인이었다면, '고작 아플 거라는 이유로 보건실에 들어가 보지 않고' 살인을 포기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도 범인이 보건실에 들어갔다는 건 확신이 있었으니 그랬지 않겠어?
오마지나 하나시 : 안 그래요, 이 쓰레기 년아?
오마지나의 마지막 마디가 끝나자 시나하라가 깜짝 놀라 오마지나에게 뭐라고 말을 했지만, 오마지나는 가볍게 무시한 뒤에 턱을 짚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 듯했다. 이레나가 반론을 하려고 입을 뻥긋 대는 것처럼 보였지만 코이노가 재판석을 두 번 치는 소리에 묻혔다.
코이노 미노리 : 뭔 반박을 하려 해. 저 새끼 말이 다 맞는데. 야, 미식가. 네가 해야 할 건 반박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거다. 진실.
이레나 디너아 : 으음... 진실?
이레나는 입가가 살짝 올라가는 느낌을 주더니 이내 정색하고는,
이레나 디너아 : 진실은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게 진실이고. 보니까 이미 나로 확정 지은 듯이 보이는데, 이대로 투표하기에 조금 찝찝할걸? 증거가 없기 때문이지.
센이시 히치카와 : 물적 증거야 찾으면 나올 거야. 허튼 수작 말고 진실을 말해줘, 이레나.
이레나 디너아 : 찾으면 나온다고? 그래? 그렇다면 보여 봐. 내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물적 증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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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적 증거. 사건에 관한 어떤 특정한 물건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 즉, 어떠한 증거의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내야 하는 건데...
명확히 드러난 증거도 딱히 없었고, 현재 재판장에서 더 조사하기는 무리인 데다 여기서 더 이끌 이야기가 없다. 고민하는 와중에도 검정은 변명을 생각할 테니, 지금 당장 떠올려내는 것이 최선이다. 일단 친구들과 얘기를 해 볼까?
센이시 히치카와 : 이 상황에서 물적 증거라... 뭐가 있을까?
캡틴 유레이 : 흠... 타라를 마취하는 데 쓴 손수건이라던가? 지금 존재할 리가 없나.
토라시 치사토루 : 흉기... 는 아까 얘기 끝났잖아. 나올 건덕지가 더 있는 기가?
히네노야 나오미 : 음...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아.
논의조차 허무하게 끝이 나자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마치 중요한 시험을 치고 있는데 평소에 잘 풀던 문제가 안 풀리고, 잘 읽던 글이 안 읽히는 것처럼. 최대한 빨리 길을 찾아야 한다. 시험에는 시간제한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지? 어떻게 해야...
니에류우 텐 :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죽어도 무너지면 안 돼. 그렇게 되면 흑막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잖아, 맞지?
... 어제 저녁의 니에류우의 말. 그와 함께 갑자기 주변 배경이 까맣게 물들며 머릿속으로 목소리들이 침입해 왔다.
타라 이루카나 : 센이시, 들리지? 지금은 머릿속의 작은 소음을 끌어내는 거야. 제일 깊숙한 곳까지 파헤쳐.
니에류우 텐 : 내가 무너지지 말라고 했지? 쓸데없을 것 같은 조금의 궁금증까지 잘 떠올려 봐. 원래 아주 조그마한 의문부터 사건이 풀리는 법이거든.
의문이라면 몇 개 있는데... 니에류우, 타라. 혹시 너희의 마지막에 비밀이 숨어있는 거야? 내 말이 들린다면 대답해 줘.
타라 이루카나 : 아쉽지만 이 이상은 너에게 달렸어, 센이시.
니에류우 텐 : 너를 믿어.
... 나를 믿어.
타라 이루카나 : 언제나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갑자기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과 함께 목소리가 작아졌다. 사라졌지만 텅 비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언제나 지켜보고 있겠다고 했으니까.
좋아. 역시 그게 답이었던 건가? 정답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지만 나는 나를 믿고 있잖아. 셋 세면 지르는 거야. 셋, 둘, 하나...
센이시 히치카와 : 물적 증거라면 충분히 있어!
코이노 미노리 : 오, 기억상실증. 뭐라도 알아냈나 보네?
이레나 디너아 : 말할 테면 말해 봐. 어차피 터무니없을 테니까.
니에류우와의 마지막 대화에 정답이 들어있었다. 니에류우는 분명히 나에게 탈출구에 대해서 말을 했었지.
나의 이틀 간의 얄팍한 분석에 따르면, 니에류우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희박한 가능성을 가정하고서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땐 못 느꼈지만, 니에류우가 불침번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고 교실에서 죽은 현재에서는 분명 느낄 수 있다. 니에류우는 탈출구에 대한 정보를 받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 정보가 가짜든 진짜든.
즉, 내 추측은 이것이다. 검정이 교실에서 탈출구를 찾았다는 메시지를 보내 니에류우를 끌어들인 것이 아닐까? 타라의 부재는 그녀에게도 똑같은 메시지를 보내놓았다고 니에류우에게 둘러대면 해결될 것이다. 니에류우는 위험 상황에서 상대를 제압할 힘이 있으니 방심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고.
나는 생각을 충분히 정리한 뒤에 말했다.
센이시 히치카와 : 이레나, 네가 정말로 결백하다면 보여줘. 너와 니에류우의 채팅 기록을 말이야.
후카바야시 츠이키 : 엥, 갑자기 채팅 기록?
이레나 디너아 : 미, 미안하지만 사적 얘기가...
이레나가 눈동자를 떨며 말까지 절었다는 것은, 이게 정답이라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상황을 장악한 느낌을 충분히 받아들이며 당황한 이레나를 보았다.
센이시 히치카와 : 니에류우는 남자, 너는 여자. 만난 지 겨우 이틀. 사적인 얘기를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라고 보는데?
하타미츠 코지 : 말 한 번 잘하셨습니다. 찔릴 만한 것이 없다면 그냥 보여 주세요.
이레나 디너아 : 진짜로 사적인 이야기가 있었어..! 비밀 같은 거! 니에류우가 제일 믿을만하니까 털어놓았을 뿐이라고..!!
이레나가 우물쭈물하며 손톱을 뜯어 입 속으로 넣어버리자, 어딘가에서 침착한 설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나하라 아쿠아 : 그냥 속 시원하게 보여 줘. 비밀을 알게 됐다고 해서 아무도 널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아. 우리도 널 믿고 싶어!
오마지나 하나시 : 그 '우리'에서 나는 빼 줘. 난 저 년 이미 안 믿거든?
시나하라 아쿠아 : 넌 그냥 닥치고 있어! 이레나, 아니, 디너아. 제발 부탁이야...
이레나는 시나하라에게서 고의적으로 시선을 피한 후 검지손가락을 입에서 떼었다. 꽤 거리가 멀었는데도 손톱 끝이 울퉁불퉁하게 깎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레나는 뗀 손을 다시 입으로 가져가며, 침묵을 유지하려는 듯싶더니...
이레나 디너아 : 모조리 다 헛소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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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반론. 그 주인공은 이레나였다. 여자는 처음 상대해 봐서 자신이 없었지만 이레나는 정신적으로 몰린 상태이기 때문에 비교적 쉬울 것 같았다.
이레나 디너아 : 애초에 보건실에 들어간다고 클로로포름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지? 어딘가에 숨겨놓았을 수 있잖아? 난 그때 시나하라랑 같이 보건실에 들어갔으니 샅샅이 뒤지기란 불가능했을 거고.
센이시 히치카와 : 글쎄, 창고에도 흉기를 대놓고 잔뜩 뿌려놓던 모노키츠네가 살인 도구인 클로로포름을 숨기는 건 말이 안 되지.
코이노 미노리 : 둘이 화목하게 대화하는데 끼어들어서 죄송한데, 증거 중 한 개는 기억상실증이 말한 대로 채팅 기록이고, 물적 증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적인 증거도 충분하거든? 절대로 심증으로만 추리한 게 아니란 말이지. 이렇게 발버둥 친다고 희망이 있겠냐?
이레나는 나에게 쏘던 시선을 5° 정도 옆으로 돌려 코이노에게 향했다. 이 상태에서 상황적 증거라니? 심지어 물적 증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나도 자연스레 시선을 코이노에게로 돌렸다.
코이노 미노리 : 너, 어제 오후에 식당 들어올 때. 배 부여잡고 들어왔잖아. 자해해서 그런 거 아니야?
이레나 디너아 : 윽.. 오늘 저녁은, 무어냐!
이레나가 배를 감싸 안고 고통스러워하며 들어왔다.
나는 어제 저녁의 식당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레나 디너아 : 무슨 억지야? 그건 당연히 배고파서였지. 근데 그때 너도 있었냐?
코이노 미노리 : 말 돌리시는 솜씨가 참 탁월하셔. 초고교급 말 돌리기 장인이라도 되나 보네? 아무튼, 빨리 배 까 봐.
코이노의 말과 동시에 재판장 전체가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하나리 에린 : 미, 미노리! 아무리 그래도 여기 남자도 있는데 배를 까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센이시 히치카와 : 아니, 하나리. 조금만 지켜보자. 엄청난 묘수일 수도 있잖아.
나의 말에 모두 상황을 지켜보자, 그에 반응하듯 이레나는 옷자락 주위에서 손을 이리저리 꼬물거리고 있었다. 손등 위로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린 채 그녀의 행동에 집중했다. 그러자...
이레나 디너아 : 미안해, 모두들... 어차피 이제 슬슬 한계였어.
이레나는 급속도로 배를 가리던 옷가지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배를 마주할 생각에 조금 긴장했지만, 긴장감이 무색하게도 이레나의 배는 피로 물든 붕대 몇 겹에 가려져 드러나지 못했다.
히네노야 나오미 : 이... 이레나...?
이레나의 붕대는 금방이라도 풀릴 듯이 불안했다. 불안한 것은 내 심리도 마찬가지였기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지만 겨우 재판석을 잡고 일어났다.
시나하라 아쿠아 : 거... 짓말... 정말로 네가... 죽인 거야..?
이레나 디너아 : ... 너희 추리가 다 맞았어. 둘 다 내가 죽였어. 일단... 너희가 그렇게 바라던 채팅 기록이야.
이레나는 힘없이 옷을 내려놓고는 떨리는 손으로 모노패드를 꺼냈다. 이레나가 패드를 내밀자 나의 추측대로 니에류우를 교실로 부르는 내용이 드러나있었다.
이레나 디너아 / 리더! 나 1-A 교실에서 탈출구 같은 거를 찾은 것 같음!
니에류우 텐 / 정말이야? 다른 애들도 알고 있어?
이레나 디너아 / 아니 괜히 알렸다가 여우한테 들킬 수도 잇을거 같아서 타라한테만 알려줬어
이레나 디너아 / 지금은 눈이 많으니 새벽 4시쯤에 와줬으면 좋겠는데.. 선장님한테 안 들키게 조심히 와줘
니에류우 텐 / 알겠어. 그때 보자.
에스티 : 이레나... 왜 그랬어? 이렇게까지 하면서 사람을 죽일 이유가 뭐냐고!
이레나 디너아 : 먼저... 사건을 정리해 주길 바라. 설명은 그다음이야...
나는 내 삶에서 제일 괴롭게 고개를 끄덕인 후 사건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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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사건은 검정의 계획에서 시작됐어. 검정은 밤 시간에 불침번 중 한 명인 타라를 클로로포름이라는 마취제를 이용해 마취한 다음, 니에류우를 교실로 불러내 죽일 계획을 세웠을 거야.
그렇다면, 검정은 클로로포름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을까? 검정은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자성이 일반 자석보다 몇 배는 더 센 자석에 손을 찧여 보건실에 출입한 경험이 있었어. 모노키츠네 입장에선 마취제를 이용한 살인을 보고 싶었을 테니 마취제를 전시해 놓듯이 대놓고 놔뒀을 거야. 검정은 그때 클로로포름을 보았고, 살인에 이용하기로 결심해. 그래. 바로 자해를 통해서 보건실에 들어간 거야. 클로로포름을 챙긴 범인은 그것을 묻힐 손수건까지 준비를 마쳤어.
검정이 준비한 것은 하나 더 있었어. 자석에 손을 찧은 경험에서 비롯된 아이디어가 하나 더 있었거든. 검정은 자신의 손을 다치게 한 바로 그 자석을 이용하기로 하고 자석 두 개를 챙겨.
밤 시간이 되기 전 범인은 니에류우에게 '1-A 교실에서 탈출구를 찾은 것 같으니 새벽 4시쯤에 교실로 와달라'는 채팅 메시지를 보내. 그리고 밤 시간이 될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렸지.
마침내 검정이 기다리던 밤 시간이 되고, 검정은 계획대로 마취제를 묻힌 손수건으로 타라를 마취시켜. 이때 타라가 보이지 않게 그녀를 검정 자신의 방에 감췄을 거야. 아마 타라가 깨어나기 전 모든 일을 처리하고 타라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원래 자리에 옮겨놓을 계획이었겠지. 그리고 검정은 또 다른 불침번인 유레이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히 1-A 교실로 향해 그곳에서 니에류우를 기다려.
약속했던 새벽 4시, 니에류우가 교실로 들어오자 검정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흉기인 접시를 이용해 니에류우의 머리를 힘껏 내리쳐. 니에류우도 방심했겠지. 이때 머리에 흰색 가루, 즉 접시의 파편이 남지만 검정은 그걸 발견하지 못했을 거야.
검정은 서둘러 니에류우의 시체를 의자에 앉힌 뒤에 책상들을 어지럽게 배치해. 이 행동을 한 것은 교실을 밀실로 만드는 데 쓰이는 한 책상의 위치가 어색하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어. 그 책상은 바로 앞문 바로 옆에 위치한 책상. 검정은 그 위에 자석 하나를 올려놓고 걸쇠를 반쯤 걸쳐놓은 뒤 복도로 나가 문을 닫아. 그다음, 문에 자석을 갖다 대는 거야. 이렇게 하면 자석이 붙기 때문에 바깥에서 자석을 움직이면 안의 자석도 움직이게 되지. 검정은 걸쇠를 움직여 잠근 뒤 개인실로 돌아와.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검정 본인에게 설명을 듣기 전까진 알 수 없지만, 아마 계획이 꼬여서 검정은 타라를 죽여버렸을 거야. 마취제로 타라를 다시 한번 제압한 뒤 아침이 되자마자 타라를 욕조에 집어넣은 게 아닐까? 아무튼 검정은 타라를 죽인 뒤 개인실로 돌아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 앞에 나타났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시체를 발견한 거지.
이 끔찍한 모든 일을 벌이고, 진실을 숨기려고 한 검정은...
너였던 거야... 초고교급 미식가, 이레나 디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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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오직 절망만이 가득한 이 상황. 동료의 끔찍한 범행을 모조리 밝혀냈다. 재판장에는 정적만이 맴돌았다. 그저 말할 게 없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 들리면 섭섭할 지경인 그 웃음소리는 또다시 들려왔다.
오마지나 하나시 : 후후후... 후후후! 이 개 같은 년... 드디어 뒤지는 꼴 좀 보겠네!
아까와 같은 분위기라면 분명히 누군가가 오마지나에게 태클을 걸어야 했겠지만, 지금은 그 코이노조차도 입을 떼지 않았다. 입을 놀리고 있는 것은 오마지나 뿐이었다. 이레나가 곧 쓰러질 듯 휘청이는 자세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레나 디너아 : 고마워.
그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재판의 끝을 알리는 마디가 들려왔다.
모노키츠네 : 정리는 다 된 것 같으니이이...! 모노패드에 투표 탭이 떠있을 겁니다아아. 지금 바로 투표해주세요오오! 아, 무효표는 없어어어. 투표 안 하면 평생 여기 있는 거니까 꼭 해야겠죠오오?
우리 모두는 아무 말도 없이 일제히 모노패드를 눌렀다. 내가 이 사람을 투표함으로써 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아도,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
[이레나 디너아]님께 투표하시겠습니까?
[예]
모노키츠네: 흠흠..! 과여어어언.. 검정을 잡아낼 것인가아아... 아니면 검정의 승리로 모조리 사망할 것인가아아...! 두구두구두구두구우우...
모노키츠네가 팔걸이를 두드렸다.
모노키츠네: 이럴 수가아아! 만장일치로 이레나 양을 뽑았네에에! 그리고 검정은... 이레나 양이었습니다아아! 축하해애, 잘 맞췄어어!
...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는다. 방금까지만 해도 함께 웃으며 지냈던 친구가 정말로 살인을 저질렀다니... 약간의 허무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남았다.
센이시 히치카와 : 이레나... 왜 죽였어?
그냥 탈출하고 싶었다는 말까지 마음먹고 있었지만 이레나에게서 나온 말은 생각보다 황당했다.
이레나 디너아 : 죗값.
센이시 히치카와 : 뭐..?
이레나는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말을 쏟아냈다.
이레나 디너아 : 저번에 말한 적 있지? 사람을 죽였다고. 사실 내가 직접 죽인 건 아닌데... 아니, 어찌 보면 맞나. 교통사고였어. 내 은인이 있었는데, 걔를 차에 치이게 놔뒀거든. 그리고 동기 때문에 다시 떠올랐지.
이레나 디너아 : 첫 계획은 나 혼자 자살하는 거였어. 그런데... 자살하려고 할 때마다 니에류우가 찾아와서 실패했지.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걸 알았던 건지, 우연이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멍청하게도 니에류우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어... 그리고 실행으로 옮긴 거고.
오마지나 하나시 : 참 나. 웃기지도 않은 소리군. 저 말 그렇다면 재판 들어오자마자 범행을 자백했어야지. 살고 싶었다는 개소리는 못 할 거고.
이레나 디너아 : 미안해...
이레나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이레나 디너아 : 그리고... 아마 가기 전에 말해줘야겠지...
이레나는 품속에서 종이 쪽지를 꺼냈다.
이레나 디너아 : 추가 동기. 남의 비밀.
코이노 미노리 : 비밀의 주인은? 우리 중에 있나?
이레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 비밀의 주인이 이레나의 말 속에서 드러났다.
이레나 디너아 : [타라 이루카나의 비밀] 타라의 재능은 사실 초고교급 살인청부업자이다.
... 뭐?
나는 이레나의 말을 곱씹었다. 타라 이루카나. 한 순간에 떠나보낸 친구가 맞다. 재능은 식물학자가 맞다... 아닌가? 혼란이 찾아왔다.
에스티 : 그래서... 그렇게 무력이 셌구나.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연구만 할 텐데.
캡틴 유레이 : 그래서 마취를 당한지 30분이 채 안 돼서 깨어난 건가? 평소에 훈련을 했었나 보군.
우리가 어느정도 수긍하는 분위기로 흘러가자, 모노키츠네는 뭐가 또 마음에 안 드는지 팔걸이를 쾅쾅 쳤다.
모노키츠네: 타라 양 재능은 이제 됐고오오! 제일 재밌는 게 기다리고 있지 않나요오오!!
우리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닥쳐올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노키츠네: 설명할 시간은 없습니다아아! 지금 이 학원장님이 기다리다 목이 빠질 것 같거든요오오. 아무튼! 다같이 외쳐봅시다아아! 힘차게 갑시다아아, 벌칙 타아아이이임!!!!!!
사진 첨부를 까먹었군요. 혹여나 의아하셨던 분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