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간론파 Extra/프롤로그

프롤로그-1

Ellyjane 2024. 2. 20. 17:30

일본의 조그만 공원. 생활에 지친 극히 일부 사람들만 안다는, 공원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장소. 굳이 따지자면 '공터'나, '산책로'를 합친 느낌이다.
그 공원에도 밤은 찾아온다. 심지어 가로등도 없어서 어둠은 배가 된다. 하지만 그날만은 어둠만이 존재할 공간에,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일단  A, B라고 하겠다.

A : 이런 시간에 불러내신 건... 역시 '그 일' 때문인가요?

B : 어. 그중에서도 그 녀석 있잖아. 그 파란 곱슬머리. 그 녀석이 걸림돌이 될지도 몰라. 네가 어떻게 좀 잘해줘.

A : 제가... 말입니까?

B : 그 녀석 심상치가 않거든. 부탁해. 혹시 모르잖아. 걔 때문에 망치면 너도 끝장인 거 알지? 나는 좀 가볼게. 일이 있으니까.

A :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슬슬 가볼까요.

둘은 알 수 없는 대화만을 남기고 그대로 자리를 떴다. 이런 걸 훔쳐보고, 나도 참 어쩌려는 건지.
난 도망치듯 질주해 집에 들어와 문을 잠갔다. 혹시 둘이 따라와서 내 몸을 12조각 정도로 토막 낸다면 큰일이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A와 B의 대화를 훔쳐보고, 둘이 날 토막 내는 끔찍한 상상을 하는, 간이 커도 너무 큰 나는 누구냐고? 이름을 묻는 거라면 와타나베 가유다. 평범한 사람이고, 저 사람들과는 연관도 없으니 안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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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은 센이시 히치카와다. 남자, O형에 17살. 이 설명만 듣는다면 아침 7시쯤 등굣길에 나가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평범한 설명에 수식어를 더 붙일 날이 드디어 왔다. 키보가미네 학원의 신입생... 그것이 내가 붙일 수식어다.

사립 키보가미네 학원. 도심의 중심이라고도 불리는 그 건물은, 본인의 존재감을 과시하듯 서있었다. 매년 신입생을 뽑아, 이번 연도에 99기생이다.

그런 키보가미네 학원의 학생들은 초고교급이라고 불리는데, 각 분야에서 초일류인 학생들을 뜻한다. 물론 초'고교'급이니까, 고등학생 신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도 초고교급이기도 하고.

역시 진짜 크긴 하구나. 앞에 서있으니 실감이 난다. 정말 이런 곳에 가도 되는진 잘 모르겠지만, 나도 재능이 있으니까. 난 내가 천재라고 자부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잠깐.

저건 다 뭐야?!


키보가미네 학원을 눈앞에 두고 있던 내 뒤로 못해도 수십 대는 되어 보이는 밴이 자리 잡았다. 밴에서 정장을 빼입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튀어나왔다. 나는 곧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찾아오는 마취제 냄새를 느끼며 잠에 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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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이 다 사라졌을 때, 눈을 떴다.

여긴... 교실..? 아, 그렇다면 여긴 키보가미네 학원 내부인가. 대체 왜? 모든 게 의문스러웠지만 상황부터 살피자면, 나는 의자에 앉아있다. 침 자국을 대충 닦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푸른 머리의 여자아이가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여자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 : 으으... 여기가 어디냐...

센이시 히치카와 : 저, 저기. 괜찮아?

??? : 일단은. 머리가 겁나게 아픈 거 빼고는...

괜찮다는 말을 듣자 안심이 조금 되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내가 있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속상해질 틈도 없이 여자아이는 벌떡 일어났다.

??? : 으, 야. 지금 내 눈앞에 철판이 보이는데 헛것 아니지?

정말이다. 아마 창문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철판이 들어차있었다. 여러 종류의 커다란 나사로 조여져, 힘이 아무리 세도 푸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추측한 대로라면 여기는 키보가미네 학원. 저런 것이 존재할 리도 없고, 이유도 없다.

센이시 히치카와 : 근데 여기는 키보가미네 학원이지? 오늘이 99기생 입학식 날짜고... 키보가미네 학원이 입학식 날에 이렇게 될 리 없잖아.

??? : 이 상황은 예를 들어 이벤트라든가? 그래, 역시 비현실적이긴 하지. 근데 99기생..? 키보가미네 학원..? 아! 맞아, 나 99기생이었어. 혹시 너도?

센이시 히치카와 : 어, 어어... 그런데.

그녀도 99기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솔직히 반가웠다. 이런 사람이 내 클래스메이트라니, 적어도 학교 생활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외모 본 거 아니다.)

타라 이루카나 : 그럼 자기소개라도 해볼까. 나는 초고교급 식물학자로 입학하게 된 타라 이루카나라고 해. 너는?

센이시 히치카와 : 나는 센이시 히치카와 인데... 재능은........

재능. 초고교급 재능. 분명 내 앞으로도 입학통지서는 날아왔고, 재능이 적혀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어째 설까, 내 이름과 기본 지식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타라 이루카나 : 진짜? 기억이 안 난다고? 그거 심각한 거 아냐..? 아니면...

타라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나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납치범의 가능성을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라가 납치범일 수도.... 아니, 지금 생각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의외로 먼저 다시 말을 건 것은 타라 쪽이었다.

타라 이루카나 : 그럼... 혹시 기억이 어디까지 나는지 얘기해 볼래?

센이시 히치카와 : 내 이름이랑, 키보가미네 학원 같은 지식... 가족...... 그리고.... 어?

술술 기억해 나가던 내 뇌 회전이 멈췄다. 유행하는 패션, 아이돌, 프로그램 전부... 지금이 몇 년도의 몇 월 며칠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타라 이루카나 : 진짜?! 큰일이잖아! 인류 사상 최대 최악의 절망적 사건은 기억나? 나는 사회 이슈랑 날짜 다 기억나는데... 참고로 지금은 20□□년 ○○월 ◇◇일일 거야. 아마도.

인류 사상 최대 최악의 절망적 사건..? 무슨 사건이 그리 이름도 길어. 싶다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타라 이루카나 : 괜찮아?! 그러면...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같이 가지 않을래? 초고교급들에 대한 지식은 있으니까. 네 기억도 불안정한 거 같고 말이지...

나는 두통에 말은 꺼내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타라의 부축을 살짝 받고 교실을 나왔다. 교실을 나서자마자 우리는 한 명의 인물을 마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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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 안녕.

몸은 여리여리하면서도 근육이 살짝 잡혀 민첩해 보이고, 성격은 그 또래의 아이 같은 남자. 그 또래라고 해도 동갑이겠지만... 내 기준 오른쪽으로 뻗친 두 갈래의 머리와 중력을 무시하는 묶은 머리가 인상적이다. 이렇게 사람을 분석하니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쓸모는 없다.

내가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가 떼지 않았다는 것은 그 녀석의 눈동자에서 알 수 있었다. 표정 관리가 전혀 안 되어서 볼에 어디 아프냐고 써놓은 것 같다.

타라 이루카나 : 너 설마... 한스?  이런 인물을 이런 곳에서 마주치다니... 살다 살다 별일이 다 있다!

타라는 한스라고 불리는 그 남자를 보며 감탄했다. 유명한 사람인가. 한스는 볼을 긁적이며 타라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부축을 받는다고 붙어있었더니 그렇고 그렇게 보이는 건가.

센이시 히치카와 : 저기... 이름이 뭐야? 일본인 같아 보이는데 한스라는 게 본명은 아닐 거고...

에스티 : 한스 그거 본명 맞아. 에스티노아 한스라고 해. 이름 없는 무용 유랑단에서 활동하는 무용수야. 에스티나 한스라고 부르면 돼. 암튼 반갑다!

한스가 본명일 줄이야. 에스티는 말을 마치고 생긋 웃었다. 저게 그 영업미소라는 건가? 근데 그렇다면 에스티는 일본인이 아닌 건가? 역시 더 알아가야 할 남자다.

타라 이루카나 : 나는 타라 이루카나, 얘는 센이시 히치카와. 교실에서 만났는데 얘는 본인 이름이나 지식 빼곤 기억 못 하고, 나는 비교적 멀쩡해.

에스티 : 진짜야?! 기억상실이라니, 진짜 답답하겠다. 해줄 말은 없지만... 힘내라.

나는 위로를 받고(...) 에스티와 반대 방향으로 갔다. 이제 부축이 필요 없어질 정도가 되자 나와 타라는 조금 거리를 두고 걸었다. 방금 처음 본 남녀가 살을 계속 붙이고 있는 것도 힘들다.
계속 걷자 드디어 복도가 끝나고 문이 몇 개 있는 곳이 나타났다. 문이 4개... 아, 교실 1-A와 1-B인가. 당연히 방이 4개일 거라 생각한 내 실수다. 우리가 온 왼쪽의 1-B부터 열자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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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저씨... 힘 좋은 거 아니었어? 서랍장 같은 거 살짝 들어 올리는 것도 못 해?

빨간 똥머리를 정갈하게 올리고 서랍장에 앉아 다리를 꼰 여자... 와

??? : 네가 위에 앉아있으니까...!!! 빨간 머리 이 자식... 애초에 내가 이걸 왜 해야 해?

깔끔한 흰색 제복을 입고 엎드려 서랍장을 들어 올리려고 하는, 여자의 말로는 힘이 좋다지만 체격이 눈에 띄게 크진 않은 남자. 둘은 덤 앤 더머 같은 개그 콤비보다는 갑과 을의 관계에 가까워 보였다.

이레나 디너아 : 안녕, 초고교급 미식가라고들 하는 이레나 디너아에요-! 파란 머리 둘, 반가워! 참고로 이 아재는 캡틴 유레이쨩. 오글거리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고교급 선장이래. 근데 왜 이것도 못 드는지....

이레나는 발 밑의 유레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마 이레나의 첫인상은 '말보다 행동으로 해결해야 하는 여자'였을 것이다. 물론 행동을 보여야 하는 것은 나였고, 타라도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이 상황에서 선택지는 두 개. 유레이를 돕느냐, 이레나를 저지하느냐. 여자에게 강압적인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전자를 고르는 것이 훨씬 더 나았겠지만...

타라 이루카나 : 네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잖아, 미식가 씨? 너무 많이 미식하셨나 봐?

깨달았을 때는 타라가 이미 옆구리에 이레나를 껴 둔 뒤였다.

이레나는 당황해서 발버둥을 쳤지만, 타라는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타라 이 녀석...! 녀석은 생각보다 빨리 이레나 제압법을 깨달아버렸다!
한 편 유레이는 너무 갑자기 무게가 사라지자 날아오르듯 서랍장을 들어냈고, 밑엔 당연히 먼지뿐이었다. 유레이는 이레나에게 돌진하려는 듯 포즈를 취했고, 나는 더 이상 멀뚱히 서 있을 수 없었다.

센이시 히치카와 : 그만!! 거기까지!! 타라도 이레나 내려놓고, 유레이는 이레나 때리려 하지 말고. 상황도 대충 알겠으니 설명하지도 말고! 오케이? 저는 기억상실이고요....

그 후론 에스티 때와 똑같았다. 타라는 뒤늦게 유레이와 이레나(글로만 읽어봐서 이름과 매치하는 게 어려워 못 알아봤다고 한다. 제압한 것은 친구가 곧 죽을 거 같아서...)를 알아보고 신기해했고, 유레이는 나를 걱정하며 챙겨주겠다고 했다. 반면 이레나는 교실 바닥에 뻗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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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와 나는 유레이와 이레나를 내버려 두고(둘이 알아서 해결하겠지) 1-B 교실을 벗어나 1-A 교실로 향했다. 이번엔 세 명이 있었는데 옆 교실의 분위기와는 딴 판으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 : 설마, 너 내가 시인이라고 해서 이상한 비유나 하고 다닐 거라고 생각한 거 아니지? 이거 실화야?

혼자 계절에 안 맞는(...) 옷에 긴 머리를 한 여자.

??? : 물론 아니다만... 혼자 무슨 망상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제복에 모자를 쓴, 경찰 같은 착장의 남자.

??? : 너 같은 미생물만도 못 해 보이는 애가 이상한 비유나 하고 다니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운동복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조금은 과격한 숏컷의 여자.

그렇군. 생각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군.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긴 머리 여자를 상대로 나머지 두 명이 오해를 한 것 같다.

센이시 히치카와 : 저, 얘들아 안녕. 나는 센이시 히치카와고...

계속 내 말을 서술하다 마는 이유는 서술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내 말을 서술하다가 만다면 '내 이름은 센이시 히치카와, 나는 사회에 대한 기억을 잃었고 너희도 자기소개를 해라.'라는 내용으로 알면 된다.

내 말을 듣고 놀라 하는 세 명의 친구와 네 번째 듣는 내용이라 질려하는 타라. 세 명의 자기소개를 들을 일만 남았다.

시나하라 아쿠아 : 내 이름은 아쿠아 스타라이트... 가 아니고... 미안. 시나하라 아쿠아라고 해. 음유시인이고 아쿠아 스타라이트는 활동명이야.

니에류우 텐 : 초고교급 수사반. 니에류우 텐이다. 잘 부탁한다, 히치카와!

후카바야시 츠이키 : 머릿속에 때라도 꼈냐? 뭘 하면 기억을 잃어버리냐? 아, 나는 후카바야시 츠이키고... 배구는 끝내주게 하지!

세 명 다 개성이 있는데... 뭐 초고교급들이 넘쳐나는 장소에서 개성이 없길 바라는 것도 무리겠지. 아무튼 이 세 명은 적어도 이레나나 타라의 완력보단 정상인 것 같다.

니에류우 텐 : 뭐 어쩔 수 없지. 기억은 이제부터 회복하면 되는 거고. 그치, 아쿠아, 츠이키?

후카바야시 츠이키 : 누가 누굴 이름으로 부르냐?! 너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입으로 귀한 나의 이름을 부르지 마.

시나하라 아쿠아 : 그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가... 이제 클래스메이트잖아.

후카바야시 츠이키 : 아오, 진짜!

한 명이 좀 거칠지만 여기도 그냥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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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구역을 지나치니 또다시 긴 복도가 나오고, 매점과 양호실이 있었다. 매점은 예상과 다르게 먹거리로 채워져 있거나 사람이 있지도 않아서 패스. 양호실은 잠겨있었다.

좀 더 오니 기숙사라는 팻말과 함께 이전의 이상한 분위기와는 또 다른 장소가 날 반겼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대욕탕. 물론 타라의 눈이다. 타라가 잠시 좋은 생각이 난 듯 걸어가더니 한껏 실망한 채 돌아왔다. 대욕탕도 아직 잠긴 모양이다.
다음은 식당. 식당은 열려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들어가니 대정답. 안에는 4명이 있었다. 타라는 또 몇몇을 알아본다.

하타미츠 코지 : 처음 뵙는 분들이군요. 안녕하십니까, 하타미츠 코지입니다. 현재는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고요. 편하게 불러주시면 좋겠네요.

타라 이루카나 : 하타미츠 코지라면... '그의 말을 한 번 귀에 담았다면 되돌아갈 수 없다, 완벽히 안정된다!'... 는 그 심리상담사잖아!

하타미츠 코지 : 알아봐 주시다니 영광인걸요. 저도 보기완 다르게 사실 완전체는 아닙니다만... 많은 내담자 분들이 만족하시니 저도 발전에 힘을 쏟아야겠죠.

역시 심리상담사라 그런지, 말주변이 꽤 있다. 이제 몇 마디 했는데 파악 끝났다. 기본적으로 착하고, 말을 이용해 친구를 괴롭힌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 끝났어??! 끝났으면 소리 질러!!!

하타미츠 코지 : 호우. 원래 이런 분은 몇 개만 받아주고 딴 건 무시해야 돼요. 받아주는 방패 역은 제가 할 테니 여러분은 무시하세요.

??? : 소리가 작습니다!!!......... 뭐야. 왜 안 받아주냐.

실망한 듯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가리는 행동. 설마 우는 것... 은 아닐 테고 연기가 틀림없다. 그건 누구나 알 것이다. 우는 것을 연기하려고 포즈를 취하면서 소리에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하나리 에린 : 하나리 에린. 디자이너.....겁!!!!나!!!!쩔!!!!지!!!! 너희가 입은 옷 중에... 어디 보자. 흠. 말할 가치도 없다, 야.

??? : 재밌는 얘기 중이시군? 나도 껴도 될까?

어찌 보면 후카바야시의 헤어스타일과도 비슷한 검은 머리. 이 말은 그저 손질했을 뿐인 짧은 머리가 아니라 긴 머리를 짧게 자른 머리 같다는 뜻이다. 남자가 머리를 여자만큼 길렀다가 잘랐다는 사실이 뭐 그렇게 신기한지, 그때의 나는 피식 웃었다.

오마지나 하나시 : 오마지나 하나시라고 해. 초고교급 언어학자다. 사실 지금 나오는 거의 모든 고대 언어 연구는 내 기여가 있었다고 볼 수 있지.

타라는 조금 의아해하다가 그제야 오마지나를 알아본 듯했다.

타라 이루카나 : 진짜?! 기사에서 읽었어! '고대 벽화 언어 연구, 남고생이 이끈다' 그 남고생이 너였어?

오마지나 하나시 : 그게 나다. 고대 벽화 언어 연구 이끄는 남고생.

오마지나는 의기양양해하며 타라의 말을 되감아보았다.

??? : 저기... 저도 자기소개하고 싶어요.

핑크 빛이 도는 은색 양갈래의 여자아이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보았다. 액세서리를 보아 이 녀석은 성직자로, 예의 바른 성격. 코지와는 또 다른 매너다. 방금까지 주방을 조사하다 온 듯하다. 주방이 뚫려있는 구조라 대충 봤을 땐 식당 내부에 있는 줄 알았지만...

나미유 카츠키 : 초고교급 성직자... 나미유 카츠키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타라 이루카나 : 너 때문에 교회 들어갈 뻔했는데... 그 장본인을 여기서 만나네.

타라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하타미츠 코지 : 아직 기숙사 쪽은 안 가보셨죠? 그쪽에도 두 분 정도가 계십니다. 그 김에 구경도 해 보시고요.

나와 타라는 그 말을 듣고 기숙사로 향하기로 했다.

기숙사와 식당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오히려 가까웠다.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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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 새 친구들이야...?

소매가 팔의 길이와 맞지 않는 듯 축 늘어진 남자아이가 나왔다. 문에 붙어있는 명패로 이름을 알아보기 위해 뒤로 고개를 젖히다가 그만뒀다.

신마에 히요리 : ....신마에 히요리....라고 해. 재능은 하찮고 다른 애들이랑 비교도 안 되지만 초고교급 행운.... 이야. 추첨으로 뽑혔어.

초고교급 행운. 매 기수마다 일반인 중 한 명을 추첨해 초고교급 행운으로 지칭한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아무 재능 없이 뽑힌 것이 못마땅할 수도 있으나 키보가미네 학원에 입학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수를 생각하면 초고교급 행운으로 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신마에 히요리 : 개인실... 조사 중이었는데 카드 리더기..? 같이 생긴 이런 거나 다른 거의 기능은 잘 모르겠어.... 미안.

타라 이루카나 :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무슨 기능인지 알 리도 없으니ㄲ-

??? : 안녕, 얘들아.

볼에 하트 모양의 타투스티커를 붙인 여자아이가 등 뒤에서 나왔다. 방금 신마에가 나온 방의 옆 방인 것 같았다. 여자아이는 순식간에 우리 앞으로 섰다.

히네노야 나오미 : 초고교급 보드게이머, 히네노야 나오미야. 취미는 보드게임, 특기도 보드게임, 좋아하는 것은 보드게임. 평범하지?

솔직히 안 평범해 보인다.

타라 이루카나 : 보드게임 대회를 휩쓰는 사람이잖아!! 진짜 오만 인물 다 만나네... 흑흑.

타라가 눈물을 흘리는 시늉을 한창 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그것은 시작되었다.

??? : 키보가미네 학원 99기생의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아아!!! 전원 체육관으로 집합하여주세요오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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