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간론파 Extra/3챕터

3-3

Ellyjane 2026. 4. 13. 21:43











항상 상황은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간다. 예측이라니 애초에 완벽하게 가능한 일이긴 한가? 인간이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어떻게 정확히 내다볼 수 있겠어.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기도 하고. 가끔씩 예언자 같은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썩 잘 되진 않는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신의 계시를 받았다거나 신비로운 힘으로 점을 쳤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더 확실해진다. 신의 힘 정도는 돼야 완벽히 예측 가능하다는 거니까.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인간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 혹은 추측은 확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그 누가 내일 오후 3시 16분 27초에 벌어질 일을 완벽히 알아맞힐 수 있겠는가. 최소한 일이 벌어지고 나서 걱정하는 편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예 믿을 수 없는 건 아니다. 완벽하지 않을 뿐 가끔은 미리 예측해 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나도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걸 즐겼다. 정말 미래를 내다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으니까. 과거형인 이유는 간단하다.

모노키츠네 : 흑막의 내통자라는 뭔가 근사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거드으은~ 그냥 그거뿐인데에에.

전지전능한 신이라 할지라도 예측 못할 만한 게 존재한다는 걸 깨달은 참이니까. 폭풍전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폭풍 전 1분, 아니, 차라리 폭풍 전 1초라고 하자. 아무튼 폭풍이 일어나기 1초 전이었다는 거다. 사람들은 뒤늦게 도망치려 하지만 곧 그런 노력도 허무하게 폭풍에 휩싸여 무로 돌아가겠지.

그래도 크나큰 폭풍이라는 재앙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유용한 교훈 하나를 얻었다는 거다.

희망은 항상 모르는 사이 갑자기 찾아온다.

--절망도 그렇다.


--


에스티 : 에..?

에스티의 목소리로 인해, 가까스로 이성을 현실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내통자라면, 내 상식 선에서는 '어딘가에 몰래 접하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사이에, 우리를 배신하고 흑막 측에서 상황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잖아..!?

시나하라 아쿠아 : 내통자라니, 무슨 의미야..?

모노키츠네 : 뭐긴 뭐야, 너희 쪽에서 우리 쪽으로 넘어와 너희 사이에 은밀히 섞여있는 배신자가 한 명 있다는 거지이이.

히네노야 나오미 : 우리 중 한 명이라고 했는데... 정말 한 명인 거야? 지금 살아있는 11명 중 한 명?

모노키츠네 : 그건 장담해애애. 정말 모든 걸 걸고 확언할 수 있어어어.

모노키츠네는 어딘가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이상한 점이 좀 있었다. 먼저, 내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존재를 상대편에게 알리지 않는 편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이건 나도 알 것 같다. 심지어, 내통자는 살아있고 한 명뿐이라는 정보까지 같이 제공했다. 우리에게 유리한 정보만 더 주는 꼴일 텐데.

신마에 히요리 : 그, 그런 정보를 주면 너희에게 이득이 없을 텐데... 무슨 생각이야..?

모노키츠네 : 으으으음... 이득이라, 별건 아니지이이.

모노키츠네 : 너희의 절망. 그런 것 말고 더 있겠어어어? 확실히 불리한 정보지만... 어쩌라고오오? 내통자는 우리의 핵심 인력이 아니야아아. 그냥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거라, 여차하면 내칠 수도 있거드으은.

캡틴 유레이 : 그렇게 막 내쳐도 되는 건가? 내쳐진 그 녀석은 어떡하라고?

모노키츠네 : 그건 너희 사정이지이이. 너희가 서로 의심하든 신뢰하든 내 알 바는 아니잖아아아. 의심해 주는 편이 좋기는 하겠지마아안.

정적이 흘렀다. 분명 그것은 입학식 때도 겪어본 적 있는, 의심암귀에 가득 찬 공기였다. 사이사이 고르게 섞인 의심 덕분에, 밀도가 커진 공기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분위기 또한 함께 휩쓸려 내려갔다.

모노키츠네 : 아, 이 멤버들에게만 알리면 안 되겠지이이. 그건 차별이니까아아. 그럼 난 이만 가볼게에에!

무책임한 발언과 함께, 모노키츠네는 떠났다. 서로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인 우리를 내버려 두고.

센이시 히치카와 : ... 어떡할까?

히네노야 나오미 : 일단 평소대로 지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혈안이 되어 내통자를 찾다 얼굴 붉히고 사이 틀어지느니 같이 지내는 게 낫겠지.

시나하라 아쿠아 : 방금 모노키츠네, 모두에게 같은 사실을 알리러 간 거겠지? 내통자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앞서 얘기한 구조에 대한 얘기까지.

에스티 : 아마 그럴 거야. 어떡하지? 모노키츠네보다 한 발 앞서는 게 좋을까?

캡틴 유레이 : 모노키츠네는 순간이동을 하니까 이렇게 말하고 있는 와중에 전부 전달했을 수도 있어. 또 앞서봤자 우리가 설명해야 하는데, 굳이 그래야 할까?

그렇게 제자리인 논의가 계속되는 와중에, 누군가 지나치게 큰 소리로 식당 문을 열고 우리 모두의 시선을 집중했다.

코이노 미노리 : 좋은 아침, 내통자 후보 여러분.

히네노야 나오미 : 무슨 소리야, 우리 중에 내통자가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코이노 미노리 : 뭐, 후기부터 말하자면 썩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어. 이미 대충 눈치채고 있었거든. 그게 누구인지까지도.

공기가 술렁이듯 일렁였다. 표정을 읽는 코이노의 능력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리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한층 대단한 일이었다. 코이노의 성격 상 알려줄 생각은 없겠지만.

코이노 미노리 : 그래도 너희를 딱히 배척한다거나 할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해. 평소와 별다른 건 없을 거야.

에스티 : 그 '평소'란 게 배척하는 거 아닌가...

코이노 미노리 : 내가 언제 너희를 배척했어. 같이 안 다니는 거뿐이지 배척이라고 부르기는 좀 뭐 하잖아.

센이시 히치카와 : 그래서, 왜 왔어?

코이노는 슬쩍 우리 테이블에 합석했다. 자신도 갑자기 추가로 등장한 예외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회의에 참석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코이노도 새로 알아낸 게 있다는 건가?

코이노 미노리 : 새로 알아낸 건 당연히 있어.

센이시 히치카와 : ... 또 생각을 읽은 거야?

코이노 미노리 : 당연하지. 나한테 뭔가 기대하는 표정이었잖아. 얘가 그냥 심심해서 온 건 아닐 텐데, 하면서.

코이노는 자연스럽게 테이블 쪽으로 몸을 기울여 턱을 왼손으로 받쳤다. 손가락을 까딱이며 자신의 턱 부근을 두드리면서, 코이노는 말을 이었다.

코이노 미노리 : 모노키츠네가 안 알려준 것 같던데, 사실 이번에 열린 건 3층뿐만이 아니거든.

신마에 히요리 : 응..? 처음 듣는 소리인데...

코이노 미노리 : 저번에 디자이너가 그려준 1층 지도를 기억해? 잠긴 곳이 몇 군데 있었거든.

나는 신중하게 하나리의 1층 지도를 떠올렸다. 2층 계단은 그때 시점에서는 당연히 잠겨 있었을 테고...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첫째 재판에서 범인 후보를 좁히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보건실. 보건실은 원래 잠겨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급한 상처를 입거나 그런 사람을 치료 혹은 간호해 줄 사람 한 명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또 기숙사 쪽의 대욕탕은 어떻지? 사실 샤워실이 개인실마다 잘 구비되어 있기도 하고, 굳이 갈 필요도 없었기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지금까지 잊고 있던 곳이기도 하고.

시나하라 아쿠아 : 분명 보건실이랑... 대욕탕이었지?

코이노 미노리 : 잘 기억하고 있네. 그 두 군데가 열렸던데, 보건실은 사실 하도 많이 들락거려서 안 가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해. 그리고 대욕탕은... 꼭 가봐.

코이노는 그 이상 자세한 설명 없이 말을 끝내버렸다. 왜 그러냐고 묻는 옆자리의 유레이에게, 코이노는 시선으로 식당의 위쪽 구석을 가리켰다. 감시카메라. 코이노는 흑막을 의식하고 있어서 말을 아끼는 거겠지. 그 덕에 우리 모두 납득했다.

센이시 히치카와 : 그래도 대욕탕은 다 같이 가기 힘든 장소겠지? 그러면 남자랑 여자로 나눠서 남자가 먼저 대욕탕을 조사하고, 여자는 보건실로 될까?

히네노야 나오미 : 그러자. 나는 좋아.

에스티 : 나도 찬성!

센이시 히치카와 : 다 조사하고 다시 식당으로 모이자.

그렇게 우리는 성별대로 조를 나눠서 조사를 다시 시작했다. 나도 에스티, 신마에, 유레이와 함께 대욕탕으로 향했다.


--


역시, 분명 열리지 않았던 대욕탕의 문이 쉽게 미끄러져 활짝 열렸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섰고, 넓은 탈의실을 볼 수 있었다. 분명 우리는 해봐야 16명인데 지나치게 많은 락커와, 락커마다 달려있는 고유한 번호가 적힌 열쇠. 딱 전형적인 대중목욕탕이었다. 코이노가 그렇게 강조한 이유는 잘 모를 것 같았다.

센이시 히치카와 : 코이노가 뭔가 중요하다고 꼭 가보라고 했으니까... 일단 조사를 해 보-

신마에 히요리 : 없어.

캡틴 유레이 : 응?

신마에가 딱 잘라 말한 것과는 반대로, 그의 표정은 화색 하게 변했다. 신마에는 웃으며 우리를 돌아보았다. 마치 희망을 품은 것처럼.

신마에 히요리 : 가, 감시 카메라가... 없어..!

센이시 히치카와 : 응..?! 저, 정말?!

나는 순간적으로 크게 소리 지른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통 감시 카메라는 구석 어딘가에 설치되어 있을 텐데, 대욕탕 안에서는 어디에도 감시 카메라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카메라가 있으면 안 되는 곳에는 안 달겠다는 건가... 쓸데없는 부분에서 양심적이어서 기분이 나빠졌지만 확실히 큰 발견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았다. 감시 카메라라는 살벌하고 커다란 형식적 도구만 없을 뿐이지 사실 어딘가 초 미세 카메라가 있어서 감시는 문제없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실험을 위해서 우리가 들어온 문을 꼭 닫고 목을 가다듬고서-

센이시 히치카와 : 어이, 모노키츠네!

에스티 : 으악, 깜짝이야. 갑자기? 설마 모노키츠네한테 알려주려는 건 아니지..?

센이시 히치카와 : 당연히 아냐. 봐, 모노키츠네가 나오지 않잖아.

실험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역시, 모노키츠네는 내 부름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 말은, 대욕탕이라는 장소에는 감시 카메라가 정말 없다는 뜻이 된다!

캡틴 유레이 : 정말이네..? 그렇다면, 앞으로 중요한 회의는 여기서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센이시 히치카와 : 그래도 너무 자주 다니면 오히려 들킬 거야. 정말로 중요한 얘기를 할 때만 부를게.

신마에 히요리 : 흑막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가 있다니... 정말 다행이랄까, 안심이 돼... 약간 희망이 보인 것 같기도 해..!

에스티 : 큰 발견인데..! 그래도 일단 실제로 존재하는 단서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싹 다 샅샅이 조사해 보자.

그렇게 우리는 락커마다 하나씩 끼워져 있는 열쇠를 돌려 열어봤지만, 발견한 건 없었다. 본격적으로 대욕탕으로 들어갔을 때는 훨씬 더 정보량이 적었다. 소름 돋게도, 평범한 목욕탕과 완벽히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정확히 '평범한 목욕탕'의 모습이 어땠는지는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는다. 질리지도 않는지 또다시 아파져 오는 머리를 감싸 쥐고서, 나는 대욕탕 한 편의 작은 문으로 다가갔다.

센이시 히치카와 : 여긴 뭐지?

에스티 : 사우나네. 목욕탕에 흔히 있는데, 처음 봐?

센이시 히치카와 : 처음 본다기보단... 기억이 잘 안 난달까. 이런 곳에 오래 있기도 했고... 나는 기억이 불안정한 편이니까.

캡틴 유레이 :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너무 부담감 갖지 말고, 푹 쉬어도 되니까.

유레이는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머리로는 쉬어도 된다고, 여기선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고 이해하고는 있지만 내 정신이 막아선다. 이제 두통은 그저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니까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 사실 그 두통은 실내의 탁한 공기 때문이기도 한데, 하루라도 더 빨리 바깥공기를 마시려면 더더욱 쉬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잡생각은 그만하고서 다시 조사에 몰두했다. 사우나, 인 것 같은 그 장소의 문 위에는 80°C라고 적혀 있었다. 실내 온도가 80°C라는 뜻인데, 나는 절대 5분도 못 버틸 온도다. 하지만 조사를 위해서라도, 나는 호기롭게 안으로 들어섰다.

센이시 히치카와 : 앗..! 뜨거워..!

캡틴 유레이 : 난 뜨거운 거 잘 버티니까, 여긴 나한테 맡겨.

나는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엄청난 열기에 곧바로 뒷걸음질 쳐 나왔고, 대신 유레이가 들어갔다. 유레이는 그 두꺼운 옷을 껴입고도 덥지도 않은지, 말 그대로 열띠게 조사를 시작했다.

신마에 히요리 : 우, 우와... 대단해... 나 같은 건 조금도 버틸 수 없는 온도인데...

유레이가 사우나 안을 조사하는 동안, 우리도 대욕탕의 구조라던가 몇 가지 비품을 모두 살폈지만, 딱히 얻은 건 없었다. 게다가, 유레이도 오래 안에 있던 것치고 딱히 뭔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실질적으로 얻은 단서는 없었지만, 흑막의 눈으로부터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큰 정보였다. 우리는 꽤 만족한 채 식당으로 향했다.


--


여자 인원들은 보건실에 있었다. 그래봤자 두 명뿐이지만, 둘 다 방문 경험이 있던 데다 보건실은 꽤 좁았기 때문에 조사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히네노야 나오미 : 너도 여기 들어와 본 적 있지? 난 에스티나 센이시 때문에 왔었고.

시나하라 아쿠아 : 응. 저번에 신마에 때랑... 이레나랑 왔을 때...

둘 사이에 살짝 정적이 흘렀다. 이레나가 죽은 지도 꽤 됐지만, 역시 죽은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꺼려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최후가 안 좋기도 했고, 직접 눈앞에서 봤으니 더 그랬다.

하지만 히네노야는 심기일전하고서 각오를 다졌다.

히네노야 나오미 : 자, 조사하자. 별로 조사할 건 없을 것 같지만.

시나하라 아쿠아 : 그래. 그럼... 이건 뭐지?

시나하라는 보건실 한 편의 작은 직육면체로 다가갔다. 앞쪽에는 문이 달려 있었고, 손잡이를 당기면 쉽게 열리는 구조였다. 시나하라가 문을 열자, 엄청난 냉기와 함께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둘의 시야에 들어왔다.

시나하라 아쿠아 : ..?

히네노야 나오미 : 정확히 말하자면 수혈팩이겠지.

시나하라 아쿠아 : 이런 게 왜 필요한 거지? 우리 중 누군가 크게 다칠 때를 대비해서인가?

히네노야 나오미 : -라기엔, 모노키츠네가 딱히 치료를 해줄 것 같지도 않고, 우리 중엔 수혈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가 없는데. 그게 모노키츠네의 기만질이자 목적인가?

둘은 잠시 수혈팩을 비치해 놓은 목적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가 절대 생각하기 싫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려 버리고선 잠시 멈췄다.

히네노야 나오미 : ... 설마.

시나하라 아쿠아 : 이것도 살인 도구로서 이용하라고 준 걸까..? 진짜 피긴 하지만 뿌리거나 해서 연출할 수 있을 테니까... 윽, 말하다가 비위 상했어.

히네노야 나오미 : ... 모노키츠네... 어디까지 우리를 놀려먹을 작정이야...

둘은 조금 침울해졌지만, 다시 의지를 다졌다. 그런 모노키츠네의 기만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가느다란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서라도 조사를 해야만 했다. 둘은 각자 흩어져 조사를 재개했다.

당연하게도, 여러 가지 의료 도구가 있었다. 붕대나 거즈 같은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응급처치 도구부터, 메스나 주사기 같은 전문가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도 있었다. 그래도 의약품들이 많아 웬만한 질병이나 상처는 고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살인에도 쓰였던 클로로포름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둘은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시나하라 아쿠아 : 어때? 뭐 좀 찾았어?

히네노야 나오미 : 글쎄, 분명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장소긴 한데 말이지.

시나하라 아쿠아 :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좋겠지?

히네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찾은 건 별로 없었지만, 질병과 상처를 쉽게 치료할 공간이 생긴 것은 공동생활의 측에서든 살인 학급 생활의 측에서든 긍정적인 신호였다. 둘은 그들 자신에게 애써서 뿌듯해하며 보건실을 나섰다.


--


센이시 히치카와 : 다들 모였지? 이 인원이 '다들'이라니 조금 씁쓸하지만.

나는 테이블에 앉은 전원을 둘러보았다. 아까와 같은 인원이었지만 역시 허전해진 식당의 풍경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센이시 히치카와 : 대욕탕은 말 그대로 대욕탕이었어. 락커도 엄청 많고, 안쪽에는 큰 탕이랑 사우나도 있고.

에스티 : 딱 흔한 대중목욕탕의 이미지였지.

캡틴 유레이 : 유감스럽게도 락커 안에도 사우나 안에도 아무것도 없었어.

신마에 히요리 : 그, 그래도... 우리에게 편의 시설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달까... 좋은 것 같긴 해...

조사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끼리 상의했던 대로, 모두들 감시 카메라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식당에는 감시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말했다가는 모노키츠네에게 들키고 말 것이다. 나는 안심하며 여자 조의 이야기를 들었다.

히네노야 나오미 : 보건실은 뭐, 사실 모두 가 봤을 거라 생각하지만, 말 그대로 보건실이었어. 약품도 의료 도구도 많았지.

히네노야 나오미 : 전문가나 다룰 법한 것들도 있었지만... 확실히 간단한 처치는 할 수 있겠더라고.

시나하라 아쿠아 : 하지만... 좀 꺼림칙한 것도 있었어. 수혈팩인데, 모노키츠네가 쓸 것 같지도 않고, 우리 중엔 그렇게 전문적인 사람은 없고... 더 이상은 비위가 상해서 말은 안 하겠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

난 이미 알고 있을 것이었다. 수혈팩을 의료의 목적으로 쓸 수 없다면, 그것을 피 자체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는 건, 살인 사건에서 피를 이용한 조작이나 연출 등이 가능해진다.

에스티 : 후... 어쩌지.

히네노야 나오미 :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일단 바꿔서 조사-

그때, 신마에가 히네노야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직후, 모노패드에 알림이 떴다. 나는 곧바로 그것을 확인하였다.


신마에 히요리 / 그럴 필요는 없을 거야. 대욕탕은 사실 제일 중요한 점이 있어.


그 자리에 있던 남자들 전원 신마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챘다. 감시 카메라의 부재에 관한 이야기겠지. 물론 육성으로 뱉을 수 없는 말이니 채팅으로 한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시나하라 아쿠아 / 굳이 채팅으로 말하는 건 흑막에게 들키면 안 돼서지?

신마에 히요리 / 응, 사실 거기엔 감시 카메라가 없거든.

캡틴 유레이 / 그 말대로야.

히네노야 나오미 / 정말?!?! 그건 좀 큰데?

센이시 히치카와 / 너무 자주 들락거리면 그건 그것대로 수상하니까, 정말 중요한 건이 있을 때만 부를게.


제일 중요한 사실을 전달한 후, 우리는 모두 모노패드를 내려놓았다. 모두 침묵이었지만, 시선만은 바쁘게 오갔다. 희망, 이라고 부를 만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 희망을 또다시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한 있었지만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히네노야 나오미 : 그, 그러면 일단 바꿔서 조사해 보자.

히네노야가 굳이 한 번 더 반복해 말한 것은 흑막의 시선을 의식해서겠지. 나도 맞장구치듯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흘렸다.

센이시 히치카와 : 그래. 남자들은 보건실로 가고, 여자들은 대욕탕으로 가자.

시나하라 아쿠아 : 그럼... 히네노야, 이왕 가는 김에 여자애들 다 불러서 목욕을 하는 건 어떨까? 지금 여자애들 분위기도 처진 것 같고...

히네노야 나오미 : 난 좋아. 그럼, 다 부르러 가볼까?

그렇게 시나하라와 히네노야는 꽤 신난 표정으로 식당을  나섰다. 그곳에 남은 남자 인원들도 슬슬 일어나려고 했을 때였다.

모노키츠네 : 자아암까아아안!

신마에 히요리 : 으, 으아악!

모노키츠네 : 아니 아니, 이상하지 않아아아? 그거 분명 이상한데에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묘하게 화가 나있는 듯한 모노키츠네의 모습은 내 속에 우리가 잡은 작은 희망 조각이 들켜버린 건가, 하는 커다란 공포심을 자아냈다. 여기서 겨우 뚫린 구멍이 막힌다면, 겨우 찾은 해답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또 제자리걸음인가? 끝없는 불안이 돌고 돌았다. 하지만, 모노키츠네는 천진난만하게...

모노키츠네 : 여자애들이 목욕하는 걸 훔쳐볼 생각을 안 하다니, 이상하잖아아아!

에스티 : ㅁ, 뭐, 뭐라고?

모노키츠네 : 한창 혈기왕성할 나잇대의 고교생들이 그런 생각도 안 하니이이. 순수한 건지 멍청한 건지이이.

캡틴 유레이 : 갑자기 무슨 소리를..! 우린 당연히 그런 생각 따위 안 해..!

모노키츠네는 한층 더 얼굴을 붉혔다. 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화가 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보다 자기 딴에는 학원장이라는 녀석이 목욕탕 훔쳐보기를 장려하면 어떡해..?!

센이시 히치카와 : 모노키츠네, 얌전히 꺼져. 알아서 할 테니까.

모노키츠네 : 뭘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네에에. 이렇게까지 안 받아준다니이이.

신마에 히요리 : 그, 그런 거 없거든... 별로 관심도 없단 말이야...

모노키츠네 : 흐으음... 농담이 아니라 진짜 수상한데에에.

거기서 나는 눈치를 챘다. 모노키츠네가 등장한 이유는 그저 실없는 야한 농담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모노패드로 뭔가의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내용까지는 보지 못했겠지만, 모노키츠네 입장에서는 자기들에게 들키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것을 알아냈다는 것 자체가 치명적이다. 모노키츠네는 거기에 뭘 알아낸 건지 캐내기 위해 온 거고.

즉, 이 당장의 상황을 모면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센이시 히치카와 : ... 가자. 대욕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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