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혼란을 야기한 장본인인 코이노는 식당을 떠나버렸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내통자라는 심각한 주제라 분위기가 안 좋았던 거지 내용 자체는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는 등 도움이 됐으니까. 그래서 난 낮잠을 자기 전 계획했던 대로 얘기만 듣고 직접 조사하진 않은 장소가 많은 3층을 조사하기로 했다.
3층으로 올라가자 난 바로 이상한 것을 보았다. 배구선수의 연구교실 문이 열려있었다. 마침 가본 곳도 아니겠다, 나는 그곳으로 들어섰다.
후카바야시 츠이키 : 아, 뭐야. 센이시잖아.
센이시 히치카와 : 안녕, 후카바야시. 문이 열려있길래 조사도 할 겸 와 봤어.
후카바야시는 벤치에 앉아 사진 한 장을 손에 들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3층 조사 성과 공유를 할 때 이곳을 맡았던 히네노야가 사진에 대해서도 말했었다. 완전히 스쳐 지나가듯 말한 거고 결국 구조나 흑막 이야기로 넘어갔지만 기억이 난다.
센이시 히치카와 : 어... 혹시 방해한 건 아니지?
후카바야시 츠이키 : 괜찮아. 뭘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
센이시 히치카와 : 그건 네 친구들 사진이라고 들었어. 혹시 나도 조금 봐도 될까?
후카바야시는 말 대신 사진을 나에게 내밀었다. 거기에는 저번에 주운 후카바야시의 펜던트의 그것과 같은 사진이 있었다. 그렇다는 건, 후카바야시의 친구들은 ○○중 배구부의 인물들과 동일인물인 거겠네.
센이시 히치카와 : 그러고 보니 조사 성과 공유 회의 때 이 사진 때문에 왜 지인들이 우릴 구하러 오지 않냐는 얘기가 나왔었지... 이 친구들도 네가 보고 싶겠다.
후카바야시 츠이키 : 뭐, 내가 일방적으로 보고 싶은 거겠지.
센이시 히치카와 : 응?
후카바야시 츠이키 : 이 녀석들, 다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까...
잠시 뇌가 굳어버렸다. 후카바야시의 친구들이, 사진 중앙의 후카바야시를 제외한 다섯 명이, 이렇게나 환하게 웃는 그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내 일이 아니라 심하게 반응할 순 없지만, 이렇게 되면 펜던트를 돌려줬을 때 눈에 띄게 동요하던 후카바야시의 태도도 이해가 된다.
센이시 히치카와 : 아, 미안해. 아픈 기억인데...
후카바야시 츠이키 : 아냐. 그땐 완전히 피폐해져서 방에서 나가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보다시피 좀 나아졌어.
센이시 히치카와 : 정말 무례한 질문인 거 아는데... 그, 친구들은 어쩌다가 그렇게...
후카바야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지만 역시 말하고 싶지 않은 걸까. 나는 사과를 하려고 다시 입을 떼다가 후카바야시가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걸 확인하고 일단 멈추었다.
후카바야시 츠이키 : ... 최고로 기분이 좋은 날이었어. 중학생이었는데도 고등부 대회에서 우승했으니까, 재능이 뛰어나다고 코치가 아마추어 대회를 제안해서 출전하게 됐어. 가면 어른들도 있을 테니까 더욱더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밤낮을 안 가리고 노력했지.
후카바야시 츠이키 : 결국 우린 당당히 우승을 따내게 됐고... 그 후 얻은 칭호가 '초고교급 배구선수들'... 하지만 그렇게 불리기 시작한 지 몇 시간 만에, 칭호에서 '들'이라는 글자를 빼야 했지.
후카바야시 츠이키 : 상당히 들뜬 기분으로 집에 와서 씻고, TV를 틀었어. 그건 언제나와 같았지. 그리고...
후카바야시는 고개를 숙였다. 눈에 살짝 눈물이 맺혀있는 것 같았다.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하려 했지만, 후카바야시는 꼭 끝까지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것 같았다. 후카바야시는 그날의 회상을 시작했다.
후카바야시의 엄마 : 츠이키, 다시 한번 우승 정말 축하한단다. 팀워크가 정말 최고던데?
후카바야시의 아빠 : 그래, 난 우리 딸이 이렇게 재능 있는 줄 몰랐어. 직접 현장에 간 건 엄마뿐이지만 아빠도 중계방송으로 봤는데, 엄청 멋있게 잡아주더라.
후카바야시 츠이키 : 응, 고마워! 뭐, 중계가 멋있게 나왔다고 하니 한 번 볼까~ 보면서 복기도 좀 하게.
후카바야시의 엄마 : 그럼 우리는 츠이키가 집중할 수 있게 저녁식사 장도 볼 겸 나갔다 올게.
후카바야시 츠이키 : 응, 잘 갔다 와! 아, 고기 많이!
후카바야시의 아빠 : 알겠어, 알겠어.
엄마와 아빠가 나가자마자, 나는 TV를 틀고 편성표를 통해 채널을 돌려 내가 나간 대회 중계의 재방송분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내 시선은 TV가 켜지자마자 비친 뉴스에 집중되었다.
앵커 : 방금 전에 들어온 속보입니다. ○○시 주택가 근처 골목에서 여중생 5명이 집단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이번 아마추어 배구 대회에서 우승한 ○○중학교 학생들로 밝혀졌으며...
그다음부터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우승 기념으로 찍은 단체사진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금색 트로피에 우리의 행복한 얼굴이 비쳐있었다. 지금 그 얼굴들은 피해자의 얼굴이라는 터무니없는 글자를 달고 뉴스에 송출되고 있었다. 이 사진에 담긴 친구들과 나의 마지막 행복이 내 심장부터 괴로운 감정을 끌어올렸다. 왜인지 모르게도 가슴이 아팠다. 울컥, 하고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전까지 난 내가 무슨 감정인지조차 몰랐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초고교급 배구선수는 한 명으로는 부족하다. 배구는 6명이서 경기한다. 초고교급 배구선수는 항상 여섯 명이어야 하는데. 왜 나 혼자 남아버린 걸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작 집 방향이 달라서, 가 이유가 되기엔 신은 너무 매정했다.
앵커 : 한편, 현행범으로 체포된 하타미츠 아야토 씨는 제압되어 경찰차에 오르기 직전까지 자신의 짓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현장에 CCTV와 같은 증거는 없지만, 경찰은 하타미츠 아야토 씨의 몸에 피가 묻어있었고 흉기를 들고 있었음을 근거로 그를 체포했습니다.
후카바야시 츠이키 : 하타미츠 아야토...
후카바야시 츠이키 : 잠깐, 하타미츠 아야토? 하타미츠의 성이랑 똑같잖아!
센이시 히치카와 : 가족인 거겠지..?
후카바야시 츠이키 : 여기 오고 워낙 혼란스러워서 완전히 잊고 있었어... 하타미츠보다 어린 사람이 다섯씩이나 죽이진 않았을 테니까 부모님 아니면 형인가?
센이시 히치카와 : 그렇다곤 해도... 본인이 죽었으니 얘기를 못 듣네...
후카바야시 츠이키 : 뭐... 맥이 끊기긴 했는데. 어쨌든 피폐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지만 그럼에도 난 지금 여기 있다는 말씀. 아, 저번에 펜던트는 고마워.
후카바야시는 평소에 끝까지 올리고 있던 지퍼를 살짝 내려서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를 보여주었다. 돌려준 날 이후 닦았는지 반짝반짝 빛이 났다. 후카바야시는 다시 지퍼를 올린 후 벤치에서 일어났다.
후카바야시 츠이키 : 과거 얘기를 하려니 좀 어색해지네. 아, 그래. 너 배구 배울래?
센이시 히치카와 : 응..?! 저, 저기, 나는 몸 쓰는 일은 진짜 못하는데...
후카바야시 츠이키 : 괜찮아! 나 이래 봬도 초고교급 배구선수야. 잘 못 따라오면 좀 갈굴 수는 있지만...
그럼 괜찮은 게 아니잖아..?! 그래도 나는 후카바야시의 능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차근차근 배우면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후카바야시와 배구를 좀 배웠다. 결국 조사는 못했지만 내일 몰아서 하면 되니 괜찮겠지.
--
센이시 히치카와 : ... 하아... 후카바야시, 조금만 쉬면...
후카바야시 츠이키 : 나약한 녀석. 아직 언더핸드밖에 안 했잖아!
센이시 히치카와 : 아니... '밖에'는 아닌 것 같은데...
후카바야시 츠이키 : 일단 시간이 늦었으니까 나중에 마저 하자. 지금 벌써 9시 반이네.
난 시계를 봤다. 그렇게까진 안 지난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지만 후카바야시의 말은 진실이었다. 시침은 9와 10 사이, 분침은 6에 가있었다. 나는 아직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먼저 방을 나갔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기에 씻고 자면 딱 10시가 될 것 같았다.
개인실로 들어간 나는 지체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재빨리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눕자 예상했던 것과 같이 방송이 딱 맞춰 흘러나왔다.
모노키츠네 : 아- 아- 여러분, 밤이 되었습니다아아! 오후 10시에요오오! 지금 시간부로 식당 및 몇몇 시설이 폐쇄됩니다아아. 그럼, 좋은 밤 되시기이일...
나는 이불을 가슴 끝까지 덮고서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오늘 하루도 어제 못지않게 길었던 것 같다.
센이시 히치카와 : 동기... 돈... 공범. 내통자... 협력. 후카바야시... 배구...
--
모노키츠네 : 그 두 번째 이야기!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한 소녀가 있었습니다아아. 너무 사랑해서 벽을 세웠죠오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이 벽을 뚫으려 시도합니다아아. 소녀에게 소년은 안정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사랑하는 나를 부정당할 위기였어요오오. 결국 소녀는 소년을 죽이고 지옥으로 떨어졌다네요오오! 해피 엔딩! 아침이 밝았습니다아아! 모두들 즐거운 살인학급생활 되세요오오.
센이시 히치카와 : 하타미츠, 나미유...
모노키츠네의 방송은 오늘도 별다를 바 없이 기분 나빴다. 저번에도 타라와 니에류우, 이레나를 비하하듯 이야기처럼 만들어 방송하긴 했는데, 오늘은 하타미츠와 나미유라니. 혹시 이후에도 사건이 발생하면 그들도 저렇게 조롱당하게 될까...? 거기까지 생각하다, 내가 자연스레 다음 사건을 가정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센이시 히치카와 : ... 그렇지. 다음 사건은 절대 없어야 하니까... 난 무슨 생각을...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접고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식사를 다 같이 하면서, 평범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동기 같이 모노키츠네가 활동할 일도 없고, 딱 일상 중 한 페이지가 될 법한 날이었다.
센이시 히치카와 : 자, 오늘은 어떡할까? 자유 시간을 가질래?
하나리 에린 : 나 말하고 싶은 거 있어! 3층 지도가 완성됐거든!

센이시 히치카와 : 하나리, 고마워. 그래서, 오늘도 조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에스티 : 으음... 그전에, 역시 내통자에 대해 대책을 세우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후카바야시 츠이키 : 대책? 무슨 대책?
히네노야 나오미 : 내통자에 대해서 지금부터 어떻게 대할 거냐, 뭐 이런 거지.
에스티의 말에 조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어제는 분명 내통자도 피해자이니 대화로 잘 포섭하면 아군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으로 마무리지었지만, 이제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일단 코이노는 기다려보라는 충고를 하긴 했지만.
시나하라 아쿠아 : 일단 내 의견은, 무슨 일을 벌일 때까진 놔둬도 되지 않을까...
하나리 에린 : 역시 아쿠아 쨩. 나도 그렇게 생각해.
캡틴 유레이 : 아무래도, 지금 내통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냅다 찾아내자고 하면 좀 그렇고.
에스티 : ... 다들, 그렇게 생각해? 내 생각은 좀 달라서.
에스티의 표정은 언제나의 그와는 다르게 진지하고 굳어있었다. 역시 그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여기는 건가... 그 후 이어진 에스티의 말은 맥락 상 예상 못할 것도 아니었지만, 막상 누군가의 목소리로 들으니 심각성이 한층 앞으로 다가왔다.
에스티 : 난 역시, 내통자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하나리 에린 : 어... 미노리 쨩도 그랬듯이, 뭔 일 날 때까지는 기다리자고...
에스티 : 그 '뭔 일'이 살인이면?
에스티가 기어코 꺼낸 그 단어에, 모두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항상 낙관적이던 에스티가 그런 냉철한 분석을 내놓았다는 것이 한층 더 충격을 강화해 준 것 같다.
센이시 히치카와 : 에스티, 넌 내통자가 앞으로 할 일이 살인이라고 생각해?
에스티 : 정확한 건 아니지만, 만일을 위해 대비하는 게 좋잖아. 일이 벌어진 후 후회해도 소용없을 테니까.
시나하라 아쿠아 : 확실히 걱정되는 건 맞지만, 설령 목표가 살인이 맞다 해도 현재로선 언제 어떻게 노릴 지도 알 수가 없어. 그럼 일단...
시나하라가 말을 흐려야만 했던 것은 에스티의 갑작스러운 행동 때문이었다. 에스티는 갑자기 식탁을 쾅 치면서 일어났다. 모두가 예상치 못한 그의 돌변에 깜짝 놀랐다.
에스티 : 난 이제 살인 따위, 지쳤어. 난 절대 너희를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 그럼에도 계속 손 떼고 기다리기만 하자는 건...
에스티 : 너넨, 그런 마음이 없다는 거야?
센이시 히치카와 : 에스티, 진정해. 나도 당연히 살인이 싫고, 그런데도 자꾸 살인을 가정하는 내 사고가 싫어! 하지만, 내통자가 살인을 할 거라는 건 너무 넘겨짚은 거 아니야?
에스티 : 너무 흥분한 건 사과할게. 하지만 사실이잖아? 난 더 이상 누군가 죽는 건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아. 너희도 같은 마음이라면 이해할 텐데.
토라시 치사토루 : 그렇게 말하면 우린 누군가 죽는 걸 원한다는 듯이 들리잖아!
에스티는 입을 다물었다. 그 빼고는 모두 앉아있었기에, 그는 시선을 아래로 둔 상태에서 한 번 모두를 훑었다. 내통자에 대한 건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일이라는 건 이미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싸움으로까지 번질 줄은 몰랐다. 에스티는 시선을 거두고 문 쪽으로 향했다.
에스티 : 미안, 잠시동안 단체 행동에서 빠질게. 나 혼자 내통자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해 볼 테니 너넨 알아서 해.
센이시 히치카와 : 잠깐만, 에스티! 조금만 더 대화를...
에스티는 내 말을 무시한 채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학급재판 때 의논을 제외한다면 여기 와서 처음 생긴 의견 대립이었기에 어떤 대처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게다가 일시적이지만 단독행동 선언까지 해버렸으니 걱정이 한층 강화되는 건 어쩔 수 없이 따라왔다.
센이시 히치카와 : 미안. 붙잡았어야 했는데...
캡틴 유레이 : 놔둬. 감정을 추스르고 나면 돌아오겠지.
신마에 히요리 : 에, 에스티... 조금 뒷북이지만, 에스티의 말도 틀린 건 없어... 단지 속도의 차이일 뿐이잖아...
히네노야 나오미 : 나도 에스티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일단 내가 아는 에스티는 저렇게 화낼 만한 애가 아니었어.
에스티가 나가고 나서야 우리는 현실을 직시했다. 원래도 충분히 현실을 마주 보고 있었다 생각했지만, 에스티의 말대로라면 우린 너무 안일해져 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닫혀버린 문을 한 번 쳐다보고 말을 꺼냈다.
센이시 히치카와 : 분위기도 싱숭생숭해졌고, 다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야 할 테니, 오늘은 이만 해산하자. 자유시간을 가져도 좋아.
모두들 말이 없었다. 자리에 앉은 채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곧바로 문 너머로 나갈 뿐. 나도 어제 못다 한 3층 조사를 위해 밖으로 나섰다.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
3층 계단을 통해 올라가자, 바로 커다란 공간 정중앙에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토라시 치사토루 : 아, 센이시. 니도 왔나.
센이시 히치카와 : 응. 3층 조사를 다 못해서, 좀 하려고. 괜찮으면 같이 할래?
토라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라시와 함께라면, 과학실 조사는 한 번 더 미뤄야겠네. 과학실을 빼면 교실이나 디자이너 연구교실 정도밖에 남지 않지만 시간은 많으니 충분할 거다.
센이시 히치카와 : 과학실은 어차피 못하니까... 디자이너 연구교실은 어때? 내가 조사 못해본 곳 중 가장 뭔가 많을 것 같아.
토라시 치사토루 : ... 배려해 주는 거야?
센이시 히치카와 : 딱히 특별한 건 아냐. 자, 가자.
나와 토라시는 디자이너의 연구교실로 들어갔다. 시나하라가 말한 대로 여기저기 천이나 작업물이 널려있고, 벽에는 덕지덕지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컴퓨터도 그대로 있었다.
토라시 치사토루 : 뭐, 뭐고. 엄청 화려하네.
센이시 히치카와 : 아마 미술실에 비하면 깔끔한 편이라고 생각해.
토라시 치사토루 : 아무래도 그렇겠제. ... 미안하다, 그때 그냥 도망쳐 버려서...
센이시 히치카와 : 아냐, 누구라도 트라우마가 있으면 그럴 수 있지.
토라시 치사토루 : 트라우마가 있는 걸, 어떻게...
나는 잠시 흠칫했다. 토라시에게 과학실에 관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건 내 멋대로 혼자 해버린 추측일 뿐이었으니까. 그래도 들어맞은 것 같아 반쯤은 다행이었다.
센이시 히치카와 : 미안, 멋대로 추측해 버렸어.
토라시 치사토루 : 괜찮다. 언젠가는 다 말할 생각이었으니까. 센이시 너만 괜찮으면 얘기 좀 해도 되겠나?
센이시 히치카와 : 난 환영이지.
토라시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뭔가 요즘 후카바야시도 그렇고, 나에게 과거나 트라우마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좀 생겼는데... 아마 하타미츠의 죽음 때문이겠지. 하타미츠만큼은 당연히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잘 들어주고자 하는 각오로 귀를 열었다. 토라시는 계속 조사를 진행하면서 말을 꺼냈다.
토라시 치사토루 : 어떻게 들릴 진 모르겠는데... 사실 나, 실험실에서 살인사건을 목격했데이.
센이시 히치카와 : 응..?
좀 머리가 멍해졌다. 위화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이 없지만, 그 많이 없는 과거에 공통적으로 겹치는 키워드가 다른 것도 아니고 '살인'이나 '범죄'라니...
토라시 치사토루 : 목격하자마자 신고할 정신도 없이 도망쳐서... 뭐, 신고했어도 회사 쪽에서 덮어버리긴 했겠지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버렸다.
센이시 히치카와 : 여기 와서 처음 느낀 거긴 해도, 시체를 직접 보는 건 끔찍함이 차원이 다르지...
토라시 치사토루 : ... 공감할 만한 주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데이.
센이시 히치카와 : 좀 무례한 질문일지는 모르겠지만... 타라나 니에류우, 하타미츠의 시체를 봤을 때는 괜찮았어?
토라시 치사토루 : 으, 응. 그때 가슴 쪽이 찔려서 죽은 걸 봐서 그런지 딱 그런 것만 반응하게 된다... 뭐, 아무튼 다시 한번 고맙데이.
토라시는 털어놓고 나자 마음이 후련해진 듯 미소를 뗬다. 피해자가 누구였느냐, 회사 얘기는 뭐냐 등의 자세한 진상은 굳이 알고 싶지 않고, 토라시도 말하기 싫을 테니 화제를 돌렸다.
센이시 히치카와 : 음... 저기, 이 정도면 여긴 다 한 것 같지? 다음은 어디로 할래?
토라시 치사토루 : 듣자 하니, 미술실은 센이시 네가 조사했었지? 그럼 교실이 어떻겠나.
센이시 히치카와 : 미술실은 건너뛰어도 되겠어?
토라시 치사토루 : 나중에 개인적으로 가볼 테니 괜찮다.
나는 토라시의 결정을 존중하며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가장 가까운 3-A 교실로 들어서자, 이변은 바로 목격되었다. 책상 중 하나에 두꺼운 파일 하나가 올라서 있었다. 유레이가 못 보진 않았을 테니, 저번 안내책자와 같이 흑막의 짓인가..! 나는 일단 그것을 집어 들고 확인부터 했다.
센이시 히치카와 : 키보가미네 기밀문서라는 도장이 찍혀있어... 이걸 흑막은 어떻게 확보한 거지..?
토라시 치사토루 : 어떻게, 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지금은 내용을 확인하지 않겠나.
센이시 히치카와 : 아, 그래야지. 어디 보자...
나는 꽤나 자신만만하게 파일을 펼쳤다. 하지만, 그랬으면 안 됐다. 내용을 아예 생각을 안 하고 확인을 하자는 간단한 결정만으로 펼쳐버렸으니 눈에 들어온 내용에 충격을 받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 나는 일단 토라시도 단서의 내용물을 알긴 해야 하니 소리를 내어 그것을 읽었다.
초고교급 희망 프로젝트[희망육성계획]
자세한 내용에 앞서, 우리 사립 키보가미네 학원은 인조적으로 모든 재능을 가진 학생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목표치는 말 그대로 모든 재능을 가진, 통칭 초고교급 희망의 탄생이다. 현재 실험의 단계는 거의 끝자락에 다다랐으며, 실제 인간의 뇌 수술을 통한 최종 실험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를 위해 앞으로 학생들 중 초고교급 희망에 적합한 인재들만을 선발해 나갈 예정이며, 앞으로의 모든 문서에서 초고교급 희망 또는 그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키보가미네 학원의 설립자의 이름을 따 카무쿠라 이즈루 또는 카무쿠라 이즈루 프로젝트라고 지칭할 것을 권장한다.
갑자기 한 번에 밀려 들어온 정보에 뇌가 혼란해졌다. 키보가미네 학원이 저 프로젝트 하나 때문에 설립되었다고? 모든 재능을 가진 초고교급 희망? 인간의 뇌 수술을 통한 최종 실험? 카무쿠라 이즈루? 왜 초고교급 희망을 만들어내려 하지? 애초에 그게 간단히 만들어지는 건가?
수많은 질문이 뒤따라왔지만, 언제 쓰인 문서냐, 는 것이 가장 해결하기 수월해 보였다. 하지만 작성 일시가 묘하게 지워져 있어 나는 직접 추측에 나섰다. 일단 종이가 상당히 바랜 걸로 보아 꽤 옛날일 것이다. 설립 때부터 진행한, 즉 100년 된 프로젝트이며 이 문서의 작성 시점은 최종 단계 직전이니, 종이의 빛깔과 조합하면 적게는 10년, 많게는 30년 정도 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단서가 부족한 것치고 나름 괜찮은 결론이었다. 내가 추리를 한껏 펼치는 동안 잊고 있던 것도 있었지만.
토라시 치사토루 : 지, 지금 이게 뭔 소리고..? 그니까 요약하면, 키보가미네 학원이 설립 때부터 모든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기가..?
센이시 히치카와 : 그렇게 되네. 하지만 믿기 힘든 건 사실이지... 무엇보다, 뇌 수술이라던가 이런 부분은 비인륜적이라 평소의 키보가미네의 이미지와 맞지 않으니까.
토라시 치사토루 : 꽤 중요해 보이는 발견이긴 한데, 아직 의미를 잘 모르겠다.
우리가 의미를 찾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당장의 물음과 싸우고 있을 때, 그것이 갑자기 나타났다.
모노키츠네 : 그거 이리 줘어어어!
센이시 히치카와 : 어차피 일부러 놓은 거면서 실수인 척은 다 하기는.
모노키츠네 : 아, 들켰어어어? 뭐어, 아무튼 우리가 기밀 자료 모으느라 고생 좀 했단 말이지이이. 앞으로도 가끔씩 심심할 때 뿌려줄게에에.
그 말은, 모노키츠네에게는 이 심각한 내용들이 하나의 유희에 불과하다는 건가... 동물에게 먹이 던지듯 하고 있잖아. 내용에 대해 물어봤자 입만 아프고 얻을 것도 없을 것 같으니 일단 입을 닫고서, 나는 모노키츠네가 파일을 품에 안고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