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01 (비)일상편
-무한대의 도미노도 무너지는 건 순식간
"인간은 벼랑 끝에 몰려있을 때 어떤 잔혹성을 보이는가?"
모노키츠네 : 아- 아- 학생 전원은 지금 즉시 체육관으로 모여주세요오오.
갑자기 방송이 울려 퍼지며 TV에 모노키츠네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게 무슨 일이지? 당황도 잠시, 체육관으로 향하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슬슬 일어나 체육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노키츠네 : 왔니이이? 다들 입학식 때랑 똑같이 앉아봐아아.
나는 체육관 앞에 커다란 검은 상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조금 불안했지만 모노키츠네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입학식 때와 같이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코이노가 늦게 들어왔다.
코이노 미노리 : 못 볼 거 본 듯한 표정 짓지 말고 집중해. 저기 쌓인 비디오 테이프만 해도 불안하니까.
코이노의 말을 듣고 코이노가 가리킨 쪽을 보니 진짜였다. 비디오 테이프가 한 상자 가득 쌓여있었다.
모노키츠네 : 이제 너네가 여기 온 지도 24시간이 더 넘었는데에에... 너무 화기애애해서 살인 따위 나지도 않을 것 같더라고오오.
하나리 에린 : 당연한 거 아냐! 누가 살인을 한다고...
모노키츠네 : 그래서 준비했습니다아아!
모노키츠네가 비디오 테이프 박스를 들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모노키츠네가 박스의 앞면이 보이게 돌리자 우리는 그제야 테이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센이시 히치카와 : 동기 비디오...?
모노키츠네 : 그렇습니다아아! 첫 동기의 주제는 바로 '소중한 것'. 뭔진 보면 알겠지이이?
모노키츠네는 '동기' 라는 그것을 들고 검은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가 빈 손으로 나왔다.
모노키츠네 : 내가 호명하는 사람부터 검은 상자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이 쓰인 비디오를 재생시켜어어. 그리고 감상하고 나오면 끄으읕! 간단하지이이? 참고로 자신의 비디오의 내용을 발설하는 것은 허용이야아아. 다른 애들과 비디오를 공유하며 절망감을 즐겨봐아아. 대신, 다른 애의 비디오를 보며어언....
모노키츠네가 감시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노키츠네 : 나미유 양! 검은 상자로 들어가세요오오.
나미유는 조금 떨며 검은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30초 정도 지났을까? 검은 상자 안에서 나미유의 신음이 들렸다.
나미유 카츠키 : 아윽..?! 아아...
나미유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상자에서 나왔다.
모노키츠네 : 니에류우 군!
니에류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빠르게 상자로 들어갔고, 나미유와 마찬가지로 소리 지르는 것을 참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니에류우 텐 : 앗..?!
다음 순서인 유레이도 마찬가지였다.
캡틴 유레이 : 윽..! 이럴 수가..?!
유레이까지 나오자 모노키츠네는 다음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모노키츠네 : 센이시 군!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생각보단 넓었으나 안에 있는 것은 감시 카메라, TV, 의자, 테이프 상자 뿐이었다. 나는 테이프를 뒤적거리며 나의 이름이 붙어있는 테이프를 찾아 재생시킨 뒤 의자에 조심히 앉았다.
지직거리는 화면이 3초 정도 나온 뒤, 나는 평범한 가정집을 보았다. 직후, 나는 그 집이 우리 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두 남녀가 다가와 소파에 앉았다. 두 사람이 나의 엄마와 아빠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평소와 같이 꽁냥대며 TV를 틀었다. 나는 그 모습을 평소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리워지는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가 TV에서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평범한 일상이었다.
화면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엄마와 아빠는 온데간데 없고 우리 집은 불바다가 되어있었다. 베란다엔 피 웅덩이가 생겼다. 그 웅덩이로부터, 파란 머리의 여자가 카메라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엄마였다. 지금 보니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위치에 파란 머리가 누워있었다. 정황 상 아빠였다. 엄마는 계속해서 기어오다 힘이 다했는지 풀썩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엄마는 카메라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엄마 : 아무나... 좀 도와줘.. ㅇ...
그렇게 비디오가 끝났다. 나는 새어나오려는 비명을 틀어막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엄마와 아빠가 죽었는지, 혼수 상태인지도 몰랐지만, 위험한 상태인 것은 확실했다. 마음 속에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나는 비디오를 빼서 상자에 넣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는 눈물을 대충 닦아내고, 비틀대며 상자에서 나갔다.
타라 이루카나 : 센이시, 여기.
타라는 내가 운 것을 눈치챘는지, 손수건을 내밀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머지 친구들도 비디오를 보고 나오자, 분위기가 그야말로 우중충해졌다. 이런 생각은 금물이지만, 정말 곧 살인이 날 것 같기도 했다.
모노키츠네 : 오늘은 여기까지이이. 좋은 살인 학급 생활 보내세요오오.
모노키츠네는 그대로 단상 밑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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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미츠 코지 : 다들, 조금 힘든 시간일지 몰라도 제 말 들어주실래요?
하타미츠가 단상 위로 올라가 손을 흔들었다. 모두들 하타미츠를 바라보았다.
하타미츠 코지 : 저도 적잖이... 충격받았습니다. 하지만, 혼란스럽고 두려울 때일 수록 냉정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 들어왔습니다. 사실 저도... 냉정이라는 게 정말 어렵지만.. 최대한 이성적으로 사고해보죠.
오마지나 하나시 : 흠. 이성이라... 굳이 힘들게 생각 안 해도 답 이미 나왔는데?
오마지나도 단상 위로 올라갔다.
오마지나 하나시 : 자, 다들 주목. 일단 내 의견을 말해보면 그 영상들은 다 주작이야.
센이시 히치카와 : ...!
차마 ''아..!''하는 탄식 소리는 내지 못 했지만, 조금 통쾌해진 기분에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타라 이루카나 : 동의. 솔직히 내 영상 내용, 대강 말해보자면 내 동료들이 죽었어. 근데, 우리 동료들. 쉽게 죽을 사람 아니거든. 보안이 워낙 강력해야지, 이건 흑막 측이 엄청난 기술력! 이러든 그냥 부수든 못 뚫어. 그래서, 저 영상은 나에겐 대놓고 조작이다. 이런 의미.
타라는 자신의 비디오 내용을 말하면서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래, 우리 엄마 아빠가 그렇게... 참혹하게 죽을 순 없어. 라며 자신을 달래면서도, 내심 드는 '이성적인 사고'가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센이시 히치카와 : ... 내 비디오 내용도 말해볼게. 엄마 아빠가... 죽었는지, 뭔진 몰라도 피를 흘리며.... 쓰러졌어. 오마지나의 생각이 맞다면 좋겠지만... 사실 엄마 아빠가 TV를 보면서 하는 행동이라던지... 애청 프로그램이 소름돋을 정도로 일치해. 이건, 어떻게 되는 걸까.....?
내 말에 모두가 잠시 멈추었다.
이레나 디너아 : 으아아! 이럴 수가아아!
하타미츠 코지 : 아닐겁니다... 그럴 리가.
코이노 미노리 : 뭐, 일단 나는 진짜든 아니든 신경 안 써.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 없고.
잠자코 있던 코이노는 그런 말을 뱉은 뒤 체육관 문에 손을 얹어 민 뒤 나갔다.
코이노 미노리 : 그 비디오, 진짜다.
이런 말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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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은 5시 24분을 달리고 있다. 조사를 더 하기도 애매한 시간. 고민 끝에 나는 개인실에서 쉬기로 했다. 하루종일 방에만 틀어박혀있는 것 같지만, 태생이 집돌이라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서 오늘 일을 복습하고 있는데, 문을 수차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여나 죽을까 문을 살짝 열어 문틈 사이로 얼굴을 알아보려고 애썼다. 애쓴 결과, 알아낸 사실은 찾아온 사람이 하나리라는 것이었다.
하나리 에린 : 히치카와, 죽이러 온 거 아니야.
조금 열린 문을 잡고 있는 하나리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하나리의 의도는 절대 불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문을 열어주었다.
하나리 에린 : 고마워. 히치카와...
센이시 히치카와 : 무슨 일이야?
하나리 에린 :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오늘...일.
하나리의 표정은 원래 활발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어두웠다.
센이시 히치카와 : 동기 비디오... 말이지?
하나리 에린 : 그래. 내 비디오 내용, 말해줄게. 나도 타라랑 같이 동료와 친구들이 죽어있었어... 하츠미가... 마사미네가... 울면서 손을 뻗는 모습이 잊히지가 않아서... 미안.
하나리는 얘기를 하다가 눈을 가리고 등을 돌렸다. 우는 여자는 다뤄본 적이 없어 당황했다. 나의 방엔 손수건이 없었고, 타라가 준 손수건은 내 눈물을 닦는 데 썼기 때문에 줄 수 없었다. 난 급한대로 하나리에게 말했다.
센이시 히치카와 : 우리 주방 가서 차라도 마시자.
하나리 에린 : 어?
나는 하나리를 일으켰다. 하나리는 눈물을 닦아내고 일어났다.
그렇게 주방으로 가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타라 이루카나 : 센이시 너... 설마 여자 울렸냐?
센이시 히치카와 : 조용히 해! 아니니까.
하나리 에린 : 엉. 아니야.
타라는 조금 실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하나리 에린 : 허브 티랑... 유자차도 있네. 뭐 마실래?
센이시 히치카와 : 내 건 내가 할 게. 유자차 하나만 꺼내줘.
나는 유자차를 만들어 테이블 중 하나에 가져갔다. 곧 하나리도 허브 향이 나는 차를 들고 다가왔다.
센이시 히치카와 : 그래도 차를 마시니 조금 나아졌어?
하나리 에린 : 엉!
하나리의 평소의 명랑한 모습이 조금이지만 돌아온 듯 했다. 나는 차를 홀짝이며 하나리의 얘기를 계속 들었다.
하나리 에린 : 난 네가 존경스러워. 물론 아직 좀 더 알아가야 되고, 만난 지도 이틀이 채 안 됐지만...너도 분명 끔찍한 영상을 봤을 거 아니야. 근데 금세 회복하는게 대단하더라고.... 그래서....... 난 코이노 말이 신경쓰이는데...
코이노 미노리 : 그 비디오, 진짜다.
나는 코이노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그 말을 곱씹었다. 무슨 뜻이었을까? 진짜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지? 그런 의문은 나만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하나리 에린 : 비디오가 진짜인 걸 걔가 어떻게 알아?
센이시 히치카와 : 동감이야. 아무리 코이노가 표정을 읽는다던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런 쪽으로는 조금 다르지 않아?
하나리 에린 : 이건 좀 희망사항일지도 모르지만... 하츠미랑 마사미네는 그렇게 쉽게 죽을만한 애들이 아니야. 5년동안 같이 지낸 내가 제일 잘 안다고... 근데....
하나리는 말끝을 흐리더니 허브 티를 입에 가져간 뒤 컵에 있는 것을 한 번에 마셨다. 나는 아직 조금 남은 유자차를 비워낸 뒤 얘기했다.
센이시 히치카와 : 정 힘들면, 하타미츠에게 상담을 받아봐. 개인실로 가는 걸 봤으니 개인실에 있을거야.
하나리는 오 하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리 에린 : 덕분에 답을 찾은 것 같다. 코지랑 얘기해보면 더 알 수 있으려나? 고마워어!
하나리는 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식당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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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리와 얘기를 나누고 개인실에 돌아오니 시간이 어느덧 6시였다. 침대에 누워 멍을 때리고 있는데, 모노패드에서 띠링 소리가 들렸다.
[니에류우 텐 님이 센이시 히치카와, 타라 이루카나, 에스티, 이레나 디너아, 캡틴 유레이, 시나하라 아쿠아, 후카바야시 츠이키, 하타미츠 코지, 하나리 에린, 오마지나 하나시, 나미유 카츠키, 신마에 히요리, 히네노야 나오미, 토라시 치사토루, 코이노 미노리 님을 초대하셨습니다.]
니에류우 텐 / 얘들아, 식당에 모여줄래? 타라가 호출했어.
타라 이루카나 / 안오고 싶음 안와도됨 중요한건 아니라서 대신 >>센이시 히치카와<< 꼭 오셈
센이시 히치카와 / 오케이
식당에 가려고 문을 여니, 메시지를 보고 나온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식당에 들어가 다같이 회의할 때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타라 이루카나 : 별 건 아니고, 그냥 얘 기억을 어디까지 잃었나에 대해서.
타라가 날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도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은 원래 알던 것의 20%도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말하니, 타라는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하기 시작했다.
타라 이루카나 : 지금 유행하는 아이돌 세 그룹 대봐.
센이시 히치카와 : 음...... 미안한데 아이돌엔 관심이...
타라 이루카나 : 초고교급 탐정 이름 아무거나 대봐. 이건 관심이 없어도 알게 되거든?
센이시 히치카와 : 어.... 음... 모르겠는데.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타라는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이레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레나 디너아 : 아예 다른 쪽으로 방향을 휙 틀어볼까? 자 시작! 삼육구 삼육구.
이레나가 팔을 휘적이며 삼의 배수를 외자 다른 친구들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레나는 시계방향으로 팔을 빙 돌렸다.
이레나 디너아 : 1.
니에류우 텐 : 가, 갑자기? 2.
센이시 히치카와 : 3?
하나리 에린 : 히치카와 틀렸네.
나는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나리 에린 : 이것도 기억이 안 나는구나?
하나리가 고개를 휘저음과 동시에 이레나가 다른 것을 제안했다.
이레나 디너아 : 삼육구는 좀 고전이긴 해. 그럼 좀 더 현대 게임으로.... 공공칠빵 가자.
타라가 그 말을 듣고는 이레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곧 이레나는 "공공칠" 이라고 말하며 검지로 자신을 두 번, 유레이를 한 번 가리켰다.
유레이는 "빵" 이라고 말하며 검지로 내 왼편의 토라시를 가리켰다.
오마지나 하나시 : 와아앍!!!!
오마지나가 제법 과장된 리액션으로 소리를 질렀다.
센이시 히치카와 : 뭐야, 무슨 일이야? 모노키츠네라도 나타났어?
토라시 치사토루 : 뭐여. 촌구석에서 산 내도 삼육구나 공공칠빵은 아는데. 니 진짜 기억 안 나는 거가?
나는 진짜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타라 이루카나 : 너 혹시 초딩 때나 중딩 때 이런 게임 안 해봤어?
센이시 히치카와 : 해보기는 커녕 룰도 모르겠는걸. 그래서 오마지나는 왜 소리 지른 거ㅇ- 으읍!
타라가 내 입을 손으로 막았다. 닥치라는 뜻일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난 아우성을 치는 것을 멈추었다.
니에류우 텐 : 이거 큰일이네. 센이시가 일단 여기서 나가기 전까진 기억을 찾아야 할텐데. 기억을 지운 것도 흑막이 한 짓일 거 아냐.
하타미츠 코지 :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기억을 찾아드릴 방법이란 것도 딱히 없고... 이걸 어쩌죠.
센이시 히치카와 : 일단 지금은 어쩔 수 없지. 타라가 호출했다고 했지? 타라, 고맙다.
내가 타라를 바라보자, 타라는 유치하다는 듯 의자를 빼 일어났다. 난 타라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지금 시간이 저녁을 먹을 시간이란 것을 깨달았다.
센이시 히치카와 : 타라! 저녁은?
타라 이루카나 : 안 먹어!
타라는 두 손을 교차해 X자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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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가 떠나고 나는 그제야 식당의 인원을 세어보기 시작했다. 내 기준 시계 방향으로 토라시, 오마지나, 하나리, 하타미츠, 유레이, 이레나, 니에류우, 그리고 나. 8명 뿐이었다.
하타미츠 코지 : 그러고 보니 8명이 없네요. 타라 씨는 방금 가셨고, 코이노 씨야 제발 오라고 사정사정해도 안 오시겠지만 나머지 6분은...
캡틴 유레이 : 에스티, 신마에, 히네노야, 나미유, 시나하라, 후카바야시가 안 왔네. 아마 그......
유레이가 말을 다 하지 않고 미간을 찡그렸다. 생각하기 싫은 걸 생각한 모양이었다.
오마지나 하나시 : 생각하지 마. 주작이라니깐? 암튼... 밥 먹자. 야!! 모노키츠네!! 저녁밥 좀 갖다주라!
모노키츠네 여러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와 주방에 접시를 놓았다. 척 봐도 진수성찬이었다.
니에류우 텐 : 오늘 힘든 일을 겪었으니, 맛있는 거 먹고 잊자고. 내가 다른 애들 불러올테니까 먹고 있어.
나는 주방으로 가 닭고기처럼 생긴 것을 몇 개 집어 내 접시에 올려놓았다. 닭고기와 어울릴 것 같은 양배추 샐러드도 조금 올려 내 자리로 돌아갔다.
이레나 디너아 : 센이시. 그것밖에 안 먹는 거야? 먹는 데 즐거움을 가지라구.
이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본인의 접시를 가리켰다. 오늘 나온 반찬이란 반찬은 다 올린 듯 했다.
포크로 닭고기를 푹 찍자 니에류우가 들어왔다.
니에류우 텐 : 애들 다 안 먹겠대. 코이노는 못 찾았어.
코이노 미노리 : 넌 뒤에 있는 애도 못 보냐?
니에류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센이시 히치카와 : 아 코이노, 온 김에 대답 좀 해줘. 그 비디오가 진ㅉ-
코이노 미노리 : 엄마 아빠가 죽은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흑막 녀석들은 대체 날 뭘로 보는 건지? 나한테 소중한 게 부모 따위가 아니라는 건 알텐데.
센이시 히치카와 : 뭐..?
나는 내 귀를 잠시 의심했다. '소중한 게 부모 따위가 아니다'라... 그 말을 듣는 동안 머릿속에선 불바다가 된 집과 엄마 아빠가 자동으로 재생되는 중이었다. 나는 순간에 살짝 두통을 느꼈다.
엄마 : 히치카와, 키보가미네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는 게 사실이니?!
센이시 히치카와 : 어. 이것 봐. 초고교급으로 입학한 당신을 환영합니다. 라고...
아빠 : 히치카와!! 장하다, 우리 아들! 키보가미네 학원이 얼마나 엄청난 건지 생각하면... 아들 하나는 잘 키웠구만! 히치카와, 수고했어. 고맙다..!
센이시 히치카와 : 윽..?!
하나리 에린 : 히치카와! 괜찮아? 설마...
센이시 히치카와 : 기억이 조금 돌아오긴 했는데... 그냥 내가 키보가미네 입학통지서를 받았을 때인 것 같은데. 이게 도움이 될까..?
어깨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나는 그 손의 주인이 유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캡틴 유레이 : 대단하다. 이 정도 떠올린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될 거야. 잘했어, 센이시.
나는 조금 뿌듯함을 느꼈다. 깨작깨작 먹고 있던 식사를 순식간에 해치운 뒤 나는 개인실로 돌아갔다. 시간은 아직도 7시 30분이 채 안 된 상태였다.